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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물 Dec 06. 2023

12.1. 편지가 되돌아온 당신에게

What's up brother

당신께.


한 번은 갑자기 헷갈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편지봉투에 수신인을 어디에다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이죠.

우측하단일까요? 좌측상단일까요?

그래서 아무 데나 썼더니 잘못된 양식이라고 편지가 되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영국은 까다롭습니다.)


편지를 다시 보내기가 싫고 속상해서 그냥 그 편지는 버렸습니다.

아무리 '늦게 가는' 편지라지만, 식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다시 부칠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수신인이 없으면 왠지 글이 잘 안 나오고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죠. 그럼 제가 저한테 글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만 그건 또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잘 모르거나 저와 다른 공간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글이 술술 나오지만 저는 저 이기 때문이죠.


저의 안부를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당장은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그냥 시간을 때울 글을 쓰거나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것 외에는 말이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편지처럼 저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살아가자니 까마득합니다.

늦게 가는 것이 편지라지만 저는 식어 버린 것이죠.


한 번은 누가 저한테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그것도 모르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에 큰 상처를 받았고 뭔가 모를 때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투정하는 편지가 되어버렸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아무래도 잘 모르겠습니다.

투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하루는 종일 불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뭔가 행복한 일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론 적으로 생각하니

불행해져 버린 것이죠.


강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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