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 - 누가누가 힘이 세나요?

[ 엽편 소설 ]

by 그림책미인 앨리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흡입했다.

'아~ 이 시원한 공기, 얼마 만이지?'

그때였다.

'어이, 너도 나왔어. 나도 나왔어.'

'야야! 나도 나왔어. 반갑다, 친구들아~'

어라! 무슨 일이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우르르 한꺼번에 나와 인사하느라 바빴다.

보지 못했던 녀석들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원한 바람이 차갑게 다가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물이 안 나오는 겁니까?"

"소장은 뭐하나! 물이 안 나오는데 코빼기도 안 비추고. 젠장! 연휴 첫날부터 단수라니!"

"물이 왜 안 나오는 거래요?"

저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고성이 오갔고 열을 식히지 못한 채 붉혀진 얼굴은 나를 세차게 땅에 떨어트렸다.

수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양동이를 들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갔다.

주인 손에 매달린 나는 낯선 곳으로 옮겨져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오랜만! 너 들었어? 오늘 새벽부터 물이 나오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밖으로 나온 거래.

뭐, 물 나오지 않은 것은 슬프지만 그 핑계로 이렇게 바깥 공기 마시니 가슴이 뻥 뚫린다.'

집마다 양동이가 우르르 나오면서 그동안 묵은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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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고 이 아파트에 누가 사는지 궁금했던 찰나 모든 사람이 튀어나와 양동이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많은 양동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같은 공장에서 수많은 양동이가 각자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지만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분명 한 번쯤은 만날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뜻밖의 일로 만날 줄이야…….

한꺼번에 나온 아파트 사람들은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우리 양동이는 이산가족 찾는다고 정신없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다.

"에고, 그거 너무 크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들고 가다 허리 다치겠어요."

"이것쯤이야, 거뜬합니다."

양동이를 들고나온 주민들은 이 심각한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힘 자랑이 시작되었다.

남자라면 '힘'이라는 선입견이 아직 머무르다 보니 남자 손에 들려온 양동이는 덩치가 마동석 덩치가 떠올랐다.

'우리 주인, 아주 웃겨. 집에서는 힘도 안 쓰면서 갑자기 왜 나를 데리고 나온 건지. 꼴값이다.'

'야~ 난, 가다가 내동댕이칠까 봐 아슬아슬하다.'

'나 불안해 죽겠어. 할아버지는 작은 양동이 말고 왜 나를 선택한 거야? 허리 밴드까지 착착 두르더니 한숨 쉬며 나를 끌고 왔어.'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 탈 때 한 아저씨가 우리 주인한테 한 말이 기억났다.

"에고! 그리 작은 거 들고 누구 코에 붙일 거요?"

민망한 듯 어색한 미소로 대꾸하던 주인 얼굴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자기보다 큰 양동이를 가져와 철썩 물을 흘리며 '끙'하며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누군가 내 통을 퉁 쳤다.

'야, 나 좀 살려주라. 불안해 죽겠어.'

'헉! 넌 김치 담글 때 사용했잖아. 근데 지금 나온 거야?'

'말도 마! 안 주인은 들고 오다 쏟아지고 다치니 다른 걸 가져가라는데 이 아저씨 막무가내로 나를 들고 왔어.

나 들고 올라가다 쏟으면 박살 날 것 같아. 어떡하면 좋아.'

울기 직전인 김치 담는 양동이는 억지로 끌려가는 아이처럼 우락부락한 아저씨 손에 달려갔다.

"여보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소. 이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해? 수레도 안 들고 온 것 같은데."

"괜찮아요. 끄떡없습니다."

마동석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아저씨는 양동이를 바닥에 두지 않고 또 양손으로 들고 물 받기 시작했다.


콸 콸 콸

1/3이 담아지자 근육질 아저씨 목에 선명한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빠1" 한 아이가 그 아저씨 옷깃을 끌어당기며 불안한 듯 그만하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어~ 다 되었어. 됐다. 이제 가자!"

두꺼운 양손으로 큰 양동이를 번쩍 들은 근육질 아저씨 얼굴 사이로 삐질삐질한 땀방울과 함께 플래시맨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힘 자랑하던 그 아저씨는 물을 반도 못 채우고 부끄러운 듯 자리를 떠났다.

병아리처럼 작고 힘이 약해보이는 우리 주인은 나에게 물을 채우고는 웃으며 비틀비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물을 큰 통으로 옮긴 후 다시 한번 더 내려가 보니 이제는 양동이마저 주인 힘자랑이 시작되었다.


누가 누가 힘이 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