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ssion 고백

< 엽편 소설 >

by 그림책미인 앨리


"나, 여자가 되고 싶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신 종이컵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보!"

부리나케 달려온 남편은 바닥에 흘린 커피를 닦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괜찮은 거야?"

"당신, 조금 전 뭐라고 한 거죠? 다시 한번 말해봐요."

"여자고 되고 싶다고. 더 이상 숨기지 못하겠어. 당신도 알고 있잖아."

고요하고 여유로운 내 마음속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아니요. 전 몰라요.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아이 결혼이 내일인데!"

"그래. 알아. 내일이 메리 결혼이라는 거. 그러니깐 말하는 거야.

결혼식 끝나는 대로 나 성전환 수술받을래. 이해해 주길 바라."

동의를 구하는 그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26년.

잘 참아왔다. 우리 부부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다른 부부들이 우리 부부에게 자매처럼 친하다고 해도 웃어넘기며 다른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렇게 견뎠는데 이제 와서 여자가 되겠다니.

"안 돼요. 싫다고요. 메리한테 뭐라고 해요?

아빠가 여자 되길 원한데 성전환 수술하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해요? 이제 와서!"

"당신 마음 이해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마음도 헤아려줘. 나도 많이 노력했잖아.

날 사랑한다면 이제 놓아줘."

남편 말을 뒤로한 채 쾅 문을 닫고 하염없이 걸어갔다.

뜨거운 햇살은 나를 고문하듯이 내리쬐고 열을 뿜었지만 용암처럼 분철하는 내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해는 서서히 저물고 낯선 장소에 내 발길이 머물렀다.

'여기가 어딘가?'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 물결이 눈에 들어오고 자석처럼 이끌린 나는 바다 근처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26년 전 오늘처럼 해가 강렬하게 내리쬐던 날 바닷가에서 제임스를 만났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는 서핑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혼자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어쩜 저리도 다 잘 타는지. 운동 신경이 전혀 없던 나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서핑 한 번 해보자고 계속 권하는 친구 따라 단단히 마음먹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엘~ 이 분이 서핑 잘 가르쳐 줄 거야. 아는 지인인데 나도 이분한테 기초부터 배웠어.

겁먹지 말고 한 번 해봐. 난 다른 친구들이랑 더 탈게."

"야!" 친구를 불렀지만 윙크만 날리고 다른 친구들 사이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핑으로 만났다.

보통 남자들과는 다르게 언니처럼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천천히 설명해 주며 나를 많이 배려해 줬다.

단단한 몸통과 호리호리한 하체는 나와 정 반대되는 몸이었다.

눈도 크고 눈썹 또한 진하며 작은 입술, 그리고 나보다 흰 피부는 머리만 길면 여자라고 착각할 만큼 날씬하고 예뻤다.

특히 다리는 연약하면서도 예쁜,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다리였다.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서핑하기 시작했다는 제임스는 그야말로 호감형에 미남형이었다.

외모지상주의였던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외모도 외모지만 무엇보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조언했기에 한평생 살아가도 동반자로 썩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결혼했다.


결혼하고 5년이 훌쩍 지나는 사이 제임스와 내 좋은 점은 닮은 메리를 낳으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하루하루 웃음이 넘치며 다른 이웃들의 부러움을 샀다.

제임스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메리가 중학교 가면서부터였다.

"엄마, 혹시 내 속옷 빨았어요? 이상하게 안 보여요. 아끼는 건데."

"어이구. 빨래 바구니에 들어있는지 확인해 봐. 안 그래도 오늘 세탁하려 했어."

총총걸음으로 세탁실로 가던 메리는 빨래 바구니를 들여다보더니 갸우뚱거렸다.

"이상해요. 안 보여요. 분명히 넣은 것 같은데. 근데 엄마는 속옷 안 빨아요? 이상하게 속옷만 없어요."

"뭐라고? 아닌데. 빨래 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엄마가 가 볼게."

격자무늬로 된 라틴 빨래 바구니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정말 속옷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다 흘렸다는 생각으로 메리 방이며 우리 부부 방을 뒤졌다.

하지만 속옷은 찾지 못했다.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그날 밤 제임스 서재 서랍이 열려있어 호기심에 쑥 서랍을 꺼냈다.

"아니 이건....."

사라진 속옷들이 제임스 서랍 혹에서 발견되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늘 웃는 얼굴로 가족을 대하는 제임스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미심쩍은 마음은 남긴 채 모른 체했다.






제임스가 여성적이다는 생각이 깊어진 날이 일어났다.

나는 제임스와 함께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처음 입게 되는 옷인 속옷 가게로 향했다.

곧 결혼할 메리 부부를 위해 제임스와 나는 결혼 선물로 속옷으로 정했다.

뜨거운 밤을 보낼 신혼부부를 위해 그리고 우리 또한 뜨거운 밤을 보내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색과 천이 얼마 들어가지 않는 속옷들은 각자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유혹했다.

평소 메리와 나, 그리고 제임스는 거리낌 없이 대화하며 소통하기에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입어보지 못한 속옷들이 얼마나 많던지 혀를 내두르며 구경했다.


제임스를 부르기 위해 고개 돌려보니 손뼉 치며 좋아하는 제임스가 보였다.

'뭐가 저리 좋을까?'

입에 귀에 걸린 제임스는 눈을 반짝이며 점원 말에 귀 기울였다.

"엘! 여기 마음에 드는 것 찾았어. 메리 부부도 우리 것도!"

후끈 달아올라 난 매장 안 사람들 눈치를 보며 천천히 제임스 근처로 다가갔다.

"메리 부부가 좋아하겠지? 우리 것도 어때? 멋지지 않아?"

요즘 들어 부쩍 수다쟁이가 된 제임스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됐다.

"제임스~ 메리 부부한테 정말 잘 어울리겠어요. 그런데 우린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당신 것에 왜 이렇게 레이스가 많아요. 여자 속옷처럼."

사실 제임스가 선택한 우리 부부 속옷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무슨 레이스가 그렇게 많이 있는지. 뭐 내 것은 그렇다고 해도 제임스 것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남자 속옷에 그렇게 레이스가 많이 달린 것이 판매한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웠다.

제임스의 은밀한 속삭임에 물건을 구입했지만 또 다른 의구심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제임스가 나에게 쉴 새 없이 신호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임스가 나에게 보였던 달라진 말투나 행동이 그저 언니처럼 한 것이 아니라 점점 여성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낸 것이다.

'어떡해야 할까. 내일은 메리 결혼식이고 결혼식이 끝나면 성전환 수술을.........'

머리가 떨어질도록 흔들었다. 꿈일 거라고.

바다에 어둠이 깔리고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딸그락


집 열쇠를 돌리고 참담한 기분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거실에 제임스가 다리 모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망부석처럼 있었는지 굳어버린 돌 상 같았다.

"엘~ 내 이야기 좀 들어줘. 듣고 난 뒤에 결정해 줘."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제임스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26년 동안 내가 제임스에게 보냈던 그 간절한 눈빛을 그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기에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거리를 둔 채 제임스 옆에 앉았다.

26년을 살았지만 지금처럼 낯선 기운이 든 적이 없어 오히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엘~ 나, 8살 때 성 정체성이 왔었어. 이상하게 여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더 좋았어.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날아갈 것 같았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무시했어. 아직 그때는 어렸을 때이니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남학생들이 나를 여자처럼 대하기도 했어. 그래서 더 성 정체성에 흔들렸지. 이건 아니다 싶어 스포츠를 시작했어. 남자다운 운동이 뭘까 고민하다가 바다를 좋아하고 활기차며 남자다운 스포츠가 바로 서핑이라는 생각에 시작했어. 서핑은 나에게 산소 같았어. 혼란스러운 내 성 정체성을 그때만큼은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을 만났지. 수줍어하는 당신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고 당신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 결혼하고 메리가 생기면서 '남자'임을 부정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어. 그런데 메리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메리 속옷을 보니 나도 모르게 여성 본능이 나와버렸어. 작디작은 그 귀여운 속옷을 갖고 싶었고 입고 싶었어. 결국 메리 것도 당신 것도 입고 싶다는 욕망이 날 눌러버렸어. 그리고 그날 메리에게 줄 속옷 가게도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트레스젠더들이 입을 수 있는 속옷 가게였어."

그제야 제임스가 고른 속옷에 레이스가 많은지 그날따라 제임스 눈이 반짝 걸렸는지 그런 제임스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점원이 친절하게 대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제 더 이상은 숨기고 싶지 않아. 이제 메리도 결혼하고 나면 독립할 거고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남은 인생 편안하게 살고 싶어. 여성으로. 여자로."

분명하면서도 단호함이 혼합된 목소리로 제임스를 나에게 고백하였다.

머리로는 제임스를 이해한다면서 마음속에서는 망치질이 계속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제임스는 무표정으로 계속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래, 제임스. 당신 마음은 이해하겠어. 그런데 내가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그동안 우리가 쌓은 것들이 당신 선택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는데. 메리는 어떡하라고.

당신이 여자가 되고 싶다고. 성전환 수술을 원한다고 어떻게 말하지?"


그때였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임스 말에 집중을 쏟은 나는 메리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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