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엽편 소설>

by 그림책미인 앨리

오늘도 주인은 나를 휙 던지고

“여보, 나왔어.”하며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 인간은 왜 이러는 거야?’

불만이 점점 쌓여갔지만 풀 곳이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하는 대로 이끌려 다닐 수밖에.

“오늘도 버림받았군. 버림받았어.”

“네 인생이 그렇지 뭐. 그냥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여.”

“그래도 넌 바깥 구경 실컷 하잖아.”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다른 녀석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그래. 마구 짓거리라. 누가 내 맘 알겠니!’

주인 입이 귀에 걸릴거나 긴장할 때 선택받은 녀석들이 내 맘을 알 리가 없다.

내가 이렇게 싫은 소리에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무시하는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선택받을 수만 있다.

“이야, 여보. 여기와 봐 봐. 이 신발 멋지지 않아?

안 그래도 신발 바꿔야 하는데 왠지 이 반짝거림이 날 유혹해. 이것 사자.

이제 더 이상 고르는 것도 힘들어.”

처음 주인을 만난 날 그 반짝이는 눈을 잊을 수 없었다. 직장에서도 나를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른다. 첫사랑처럼 끌렸다나 뭐라나. 아이돌이 된 기분처럼 나 또한 힘주며 당당하게 다녔다. 다른 녀석들도 나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주인은 나를, 나는 주인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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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를 이뻐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되면서 나는 너덜너덜 해지기 시작했고 주인에 대한 애정이 시들해졌

다. 한 번이라도 좀 닦아주거나 씻어 주면 좋겠는데 꼬랑내 나는 양말이나 역겨운 땀내로 범벅인 채 무장한 거칠어진 발로 나를 덮쳤다. 매스꺼운 냄새로 인해 숨쉬기가 괴로워지고 형편없는 외모에 삶을 잃어갔다. 고급스러운 신발장에서 멋을 내며 기다리는 녀석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던가. 이젠 주인과 함께 있는 것은 구역질 났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다르게 주인은 바삐 움직였다.

며칠 전 주인은 아내와 심하게 다투더니 허구한 날 술통에 빠졌다.

그런 그가 A.I.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냄새 풍기며 나를 맞이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문을 열더니 밖으로 바삐 나갔다.

‘여기가 어디지?’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주인의 숨찬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고 이마에서 한 방을 떨어지는 땀을 손등으로 쓱 닦더니 안개 자욱한 곳을 응시했다. 거친 숨소리는 점점 옅어졌다. 앞을 응시하던 주인은 고개를 흔들다가 고함을 지르다가 다시 고개 흔들기를 반복했다. 정신 나간 사람 같았다.

무서움이 온몸을 덮쳐왔다. 주인은 뭔가 다짐한 눈빛으로 뒤돌아서더니 천천히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휴~

크게 한숨을 쉰 주인은 느닷없이 나를 천천히 만졌다.

그리고 주인 발냄새가 점점 멀어졌다.

‘안 돼!’라고 몇 번이나 외치고 온 힘을 다해 몸을 흔들었지만 주인은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던 주인이 갑자기 뒤로 돌았다.

‘그래. 돌아와. 그리고 나와 함께 내려가자.’

흔들리는 눈동자, 미세하게 떨고 있는 주인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제발 이쪽으로 다시 오라고!’

눈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린 주인은 다시 앞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매서운 바람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부르르 온몸을 떨었던 주인이 사라졌다. 매서운 바람소리만 들리고 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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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엥~’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도착했다.

차갑고 매끈한 촉감이 나를 만졌다.

‘만지지 마!’ 소리쳤지만 고요 속의 외침이었다.

몸부림쳐봤자 소용없었다. 그게 바로 내 운명이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공포감은 나를 혼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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