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 엽편 소설 >

by 그림책미인 앨리


"에잇! 또야! 이렇게 많은데 왜 만날 난 여기야!"

억울하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단 말인가.

오늘도 기분 상한 소리가 나를 깨운다.

빌어먹을.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이곳에 있게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저 태어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아침 6시

내가 일어나야 하는 기상시간이다.

웅성웅성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내 하루 일과가 시작한다.

다른 친구들은 들떠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저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치에 있는 71과 55번 그리고 121번은 오늘도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istockphoto-520191337-612x612.jpg


여기는 라커룸

사람들이 운동을 하기 전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나는 샤워실 입구에 바짝 붙어있어 축축한 물과 함께 지낸다.

바짝 마른 뽀송한 상태로 시작한 아침은 얼마 가지 않아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로 얼룩진다.

아침 이른 시간에는 나이가 드신 어른들이 많이 온다.

잠이 없다며 아침 일찍 와서 하루 종일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앗! 또 여기네. 난 너무 인기가 많아서 탈이라니까.

알지? 67번 자리는 미인들만 차지하는 거."

분명 구석지고 물이 찔끔찔끔 떨어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긍정 에너지를 쏟아내는 덕분에 나 또한 미인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내가 싫은 내색을 이렇게 표현한다.

반어법이라고 했던가.

그녀 말에 모든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서로 나도 미인이라며 추겨 세운다.





오전 11시 10분쯤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

그녀가 등장하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말이 적어진다.

이곳에 소문난 불평가이자 수다쟁이로 기피하는 대상이다.

"으악! 또 여기야.

도대체 락커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사용하기 불편한 곳은 폐기를 하던가.

아니면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가로막던가. 그렇게 힘들다고 말했는데 입이 콧구멍으로 막혔는지 들어주지 않는군. 재수 없어."

그녀가 말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는다.

그러면 그녀는 더 언성이 높아지며 투덜대는 모습이 스머프에 나오는 투덜이 못지않게 시작된다.


그녀가 사라지면 여기저기서 험담이 시작된다.

"아니, 말 안 해도 다 아는데 꼭 저렇게 기분 나쁘게 말해야 하나, 나 원 참."

"말도 마. 젊은 사람이 한 소리 했다가 몇 분이나 잔소리 듣고 있었어.

저런 사람과는 상종 안 하는 게 답이야."

"저 봐라. 꼭 저런 사람이 뒤처리는 후진국이다. 아니, 자기가 사용한 휴지는 왜 안 치우고 가는 기고.

몸에는 처벌처벌 뭘 저리 휘감는지. 하나도 어울리지도 않구먼."

"어머, 언니야. 그런 소리 마. 저 여자가 휘감고 있는 있는 거 다 얼마인지 알아?

알면 언니 기절한다."

"그래? 그럼, 와 여기에 다니는 건지 모르겠네. 벌거벗은 임금님이 친구라고 달려오겠다."

"뭐라고? 크크크크. 언니야. 커피 내가 한 잔 살게. 가자."

험담을 한 무리는 그렇게 떠나고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

험담하는 사람들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하였다.

그러나 마음만은 명품이 아닌 쓰레기였다.


오후 9시

이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10시에 폐강이므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마무리한다.

여전히 축축하고 습한 기습은 계속되었지만 이상하게 오후 1시부터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괜히 불안이 밀려왔다. 요즘 불이 꺼진 락커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열쇠구멍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활동하지 못한다.

마치 요양 병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욕을 듣더라도 숨 쉬고 싶다.

라커룸 불이 꺼지고 다른 락커들과 함께 잠을 잔다.

오늘도 수고한 나를 껴안으며 내일은 또 어떤 사람이 올지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다음날.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야, 67번. 네 불이 꺼졌어. 어떡해?"

난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영원히 불이 켜지지 않고 그대로 깨어나지 못하는 잠을 잤다.


istockphoto-178760803-612x612.jpg


매거진의 이전글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