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맘대로 엽편소설 1 ]
어디선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한다.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
404호 병실. 그녀는 오늘도 술을 마셨나 보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지.
아무리 알코올 중독이라지만 남편이 저리 뻔히 죽어가고 있는데 술이 넘어간다 말인가.
붉어진 얼굴, 뭐라고 혼잣말하며 보조용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는 그녀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가 슬프게 내려다본다.
‘무슨 사연이 있는 관계일까?’
하루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을 마셔야 하는 그녀와 죽어가면서도 그런 그녀를 내치지 못하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 그의 모습을 보면 정상은 아니다.
“어머~ 간호사 언니, 오늘 어디 데이트가?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설마 우리 그이 꼬시려고 하는 거야!”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또 술주정이 시작되었다. 이상한 그녀 행동으로 404호 병실에 있던 환자들은 다 병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들 부부만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두 차례 큰 수술을 한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수술은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정부 의료혜택으로 간신히 병실을 지킬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아주 잠깐 그녀 정신이 맑아졌다.
“여보, 왜 이렇게 누워만 있어요. 밥이라도 먹어요.
그런데 여보~ 난 한잔하러 가면 안 될까? 목이 마른데.”
말할 기운이 없는 그는 고개만 힘없이 끄덕인다. 입이 귀에 걸린 그녀는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쓰고 나에게 윙크를 하더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이다.
“이따 봐, 이쁜 언니!” 또박또박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졌다.
"어휴~ 저 아줌마 또 시작이군. 도대체 귀신은 뭐 하는지 몰라.”
혀를 내두르며 수간호사는 주사를 놓기 위해 404호실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달짝지근한 믹스 커피 한 잔으로 머리를 식히는 순간 어디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악!” 날카로운 수간호사 목소리에서 불기한 예감이 들었다.
침대 옆 비상벨을 누르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404호 병실에 누워있는 그의 배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점점 커질 때 수간호사는 나와 교환하길 바랐다. 앞이 캄캄했다. 실전으로 해본 적이 없어 무서웠지만 수간호사 눈빛이 순간 더 무서워 나도 모르게 교대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펌프질을 하며 제발 숨 쉬어라고 내가 아는 신들은 다 불러 기도했다. “헉” 짧은 탄식으로 다시 심장소리는 돌아왔고 난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잘했다는 수간호사 말과 의사 말이 흐릿하게 들리고 눈이 떠졌다.
그리고 내 옆 침대에는 그녀가 코를 골며 상기된 채로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누워있는 그녀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여전히 병실에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격동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진통제는 무리네요.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겠어요.
404호 환자분 잘 살펴보세요. 오래가지 못할 것 같으니...”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딱딱한 표정으로 진료실로 향했다.
“오늘은 병실에 있으세요. 어디 나가시면 안 됩니다.”
내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무슨 일인지 술 마시러 나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을 꼭 잡으며 혼잣말을 했다. 목소리가 하도 작아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녀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가 점심을 다 먹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실내화가 벗겨진 것도 모른 채 화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아주머니,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있는 힘껏 문을 찼다. 신발이 없어 발이 아팠지만 그녀가 잘못되었을까 봐 입술을 깨문 채 한 번 더 발길질했다.
이런. 내 눈앞에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변기 옆에 앉아 숨겨온 술병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지금 제정신이세요? 병원에서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해요?”
“경비 아저씨, 경비 아저씨!” 급한 목소리에 하마처럼 큰 덩치 경비 아저씨는 그녀를 번쩍 들어 병실로 데려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그녀는 또 그렇게 잤다.
한 번이라도 제정신일 때가 없었다. 아주 잠깐 돌아왔는가 하면 그건 술 사러 가기 위한 것이었다. 또 그런 그녀 모습을 그는 더 작아지고 희미해진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잘 못 본 것일까. 그의 눈에서 힘들게 한 방울씩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화장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알코올 정신병원이었다.
그녀 보호자가 더 이상 없었기에 병원에서 내린 조치였다.
알코올 냄새로 404호를 뒤덮었던 그곳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떤 환자도 없이 홀로 지내던 404호실 그의 침대를 정리하던 중 무언가가 보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검정 노트였다.
고인의 물건이라 보관실에 갖다 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판도라 상자처럼 보이는 그 검정 노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왜, 그녀는 왜 그렇게 살았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쿵닥쿵닥 심장소리가 커지고 빨라지면서 나를 자극했다.
노트를 여는 순간 난 놀라고 말았다.
세 장의 사진에서 그들의 관계가 밝혀졌다.
두 명의 돌사진, 손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연인 사진
그리고 각자 결혼한 사진을 찢어 둘이 붙여놓은 빛바랜 사진.
내 눈은 점점 더 커져갔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