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편 소설 >
드르륵드르륵
휴대폰 진동벨이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 오는 곳은 딱 정해져 있다. 상가 문의 전화 아니면 엄마다.
상가 건물은 내 것이 아니지만 휴대폰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엄마로 인해 내 번호가 연락처로 되어있어 낯선 전화가 종종 온다.
"네.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휴~ 한숨과 함께 서서히 움직인다. 육 개월 동안 방치한 팔 치료를 위해 엄마와 함께 정형외과에 가기로 했다. 물리치료받을 걸 예상하고 주섬주섬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띵똥"
나간다는 소리와 함께 엄마는 벌컥 문을 열었다.
"준비 다 했나? "
"야야, 옷 좀 딴 걸로 좀 바꿔 입어라. 추리하게 그게 뭐꼬. 엄마가 사준 옷 입어라."
또 시작이다. 내가 한 것은 무조건 안 좋은 것이고 당신이 사 준 건 무조건 좋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한숨을 내쉬면 또 꼬투리 잡을까 봐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무난한 것으로 갈아입었다.
내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이래라저래라 지시한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또 다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걸어가면 될 건데 버스를 타야겠냐고. 안 걸으니깐 자꾸 살이 찐다며 도돌이표 잔소리는 끝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찌그러진 표정으로 마주하는 순간, 다행히 구세주처럼 버스가 등장했다.
만원 버스라 앞쪽에 서 있는데 우리 집 아래층 사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고 탔다.
어어어 하면서 내 허리를 꽉 잡아 동공이 커졌다. 부딪히기 싫은 할머니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건너편 있던 여자가 한 소리 했다. "아니, 할머니 어딜 만지는 거예요!" 하지만 아래층 할머니는 무시하며 노약자 자리에 털썩 앉았다. 남자였으면 성추행범으로 몰릴 상황이었는데. 피하고 싶은 할머니다.
총총걸음으로 엄마 발 박자에 맞춰가며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정형외과인 줄 알았는데 통증 클리닉이었다.
나이가 드니 처음 가보는 병원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것 같아 갑자기 슬퍼졌다.
통증 클리닉은 나이 드신 분들만 간다는 고정관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우리 딸도 데려왔어요. 잘해 주세요."
접수하는데 옆에서 엄마는 접수원에게 계속 말한다.
그냥 있어도 되는데 데려왔다고 잘해 달라고 하는 소리에 내 얼굴은 홍당무로 변했다.
한 번 왔던 엄마는 안내원이냥 이래라저래라 계속 명령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환자는 나 혼자였다.
순간 민감해지며 어서 진료실에 들어가길 바랐다.
"임지윤 환자분~ 계신가요?"
"앗, 우리 딸이에요. 나도 같이 들어갑시다." 다쳤다는 엄마 말과는 다르게 개선장군처럼 씩씩한 발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는 엄마 모습에 부끄러움이 엄습해왔다.
"선생님, 우리 딸이에요. 어떤가요? 나보다 안 좋은가요? 너무 오래 방치해서 걱정이에요."
의사가 입 열기 전 엄마 입에서 따발총이 발사되었다.
한참을 듣던 의사는
"네. 어머니 한 번 볼게요. 잠시만, 여기 앉아 들어보세요."
기다리면서 찍었던 엑스 라이 결과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 년 넘게 방치한 것이 원인 중 하나라면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말하는 동시에 엄마 표정은 일그러졌다. 다행히 수술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받으며 살펴보자고 했다.
모녀가 함께 팔을 다치고 통증 느끼며 나란히 주사 처방을 받았다.
앗! 윽. 주사를 맞는 동안 짧은 통증 소리는 자동으로 나왔다.
예방접종 주사와는 차원이 다르게 묵직한 고통이 짧게 엄습해왔다.
긴장 푼 상태로 치료받아야 하는데 처음 온 고통으로 힘을 주었는지 말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차갑고 예리한 액체는 내 어깨뼈 속으로 침투하였다.
엄마와 나란히 근육 이완 치료부터 도수치료와 수치료를 받았다.
내가 치료받는 동안 엄마는 서둘러 병원 진료비를 계산하는 빠름으로 불편함이 다가왔다.
이 정도는 나도 계산할 수 있는데, 운동 핑계로 걸어 다니는 엄마한테 죄짓는 기분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
걸어가자고 하는 말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여기서 말 잘못하다가는 엄마와 관계가 또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을 맞췄다. 좀 걷고 싶기도 했고. 병원비 때문에 하자고 하는 대로 들어주고 싶었다.
제발 좀 집 깨끗이 하고 옷 좀 옷 다운 걸 입고 다니라는 폭풍 잔소리는 계속 들어야 했지만 효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웃는 것도 아닌 화난 것도 아닌 표정으로 엄마 발 박자를 맞추었다.
어느새 우리 집까지 오게 되고 엄마는 혼자 당신 집으로 가야 했다.
같이 밥 먹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했고 맘이 상할까 봐 먼저 인사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오늘 고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말하기 시작했다.
"밥 챙겨 먹고, 아이들 오면 간식 챙겨주고 팔은 쓰지 말고 물리치료 계속 받고.
내일 엄마랑 같이 병원 가자. 물리치료받게. 알았지?" 야단치는 건지 지시하는 건지 한참을 호통치고 뒤돌아 가셨다. 왠지 그 모습에 슬픔이 올라왔다.
내가 돈이 많았다면 엄마가 고생 안 할 건데.
엄마 말한 대로 결혼하고 살았다면 지금보다 행복할까.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행복해했을까.
지금보다는 덜 신경 쓰며 살았을까.
장군과 부하 같은 관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중간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나.
정말 물과 기름처럼 한 시간이라고 같이 있으면 불편한 관계.
그런 관계가 바로 엄마와 나, N 극과 S 극이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한 몸에 붙어있는 자석이 바로 우리 모녀이다.
아~ 내일은 또 어째 같이 병원 갈까 하니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