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편 소설 >
'문디 가스나. 와 저러고 다니노. 어휴~'
애지중지 키웠던 첫 딸은 마음에 안 드는 놈하고 결혼하더니 추리하게 살아간다.
분명 결혼하기 전에는 우리 동네 멋쟁이로 통했는데 지금은 볼품없다.
남들한테 좀 자랑하고 싶은 딸인데 지금은 가리기 바쁘다.
내가 저 저렇게 살아라고 그렇게 키웠던가.
팔은 어쩌자고 다쳐서 저리 방치한다 말이가.
그것도 오른팔을. 내도 시원찮은데 저거까지 아프다고 하니 내가 참 속이 속이 아니다.
남편 먼저 죽고 몸이 몸대로 약해지고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불면증에 혼자 집으로 들어가려니 무섭고 서글펐다. 집에 문 열기가 너무 무서웠다. 인기척이라고는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나이가 들다 보니 말도 많아졌다. 아니 옆에 아무도 없으니 참견이 많아진 걸까.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안 좋은 쪽으로만 이어졌다.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텔레비전도 좀 끄고 자라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너희들도 나이 들어 혼자 살아봐라. 아무도 없는 공간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그나저나 왜 진작에 딸아이를 내가 가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오늘 마침 병원 가는데 같이 가기로 했으니 어이 서둘러 내려가 보자.
몸 약하다고 힘든 일은 가능하면 시키지 않고 곱게 키웠는데 살림 산다고 그 예쁜 모습은 사라지고 나이 드는 것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우야노. 내 딸인데. 며칠 전 나도 다쳐 힘들지만 병원 가지 않아 방치한 딸아이 팔이 걱정돼 부랴부랴 내려간다.
헉헉 헉
'띵동' 벨을 누르니 남루한 차림으로 큰 딸이 문을 열었다.
털이 다 핀 카디건을 입고 가려는 걸 버리고 새로 사준다며 다른 것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인상을 찡그리며 편한 것이 좋은데 왜 그러냐고 하는 딸아이 말을 싹둑 자르고 재촉하였다.
썩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조금 말숙 해진 차림으로 바꿔 입은 딸고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걸어가면 운동도 하고 딱 좋겠구먼, 굳이 버스를 타야 한단다.
만원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 할 때 꼴도 보기 싫은 할망구가 버스를 타길래 모른 체했다.
사람을 잡아도 허리를 잡고 버스 안을 활보해 나까지 민망했다.
"할머니, 어딜 만져요!"라는 소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비집고 앉은 모습이 같은 할머니지만 참 얄미웠다. 사람이 어째 저럴까.
떠밀리듯이 정류장에서 내려 내가 가는 정형외과로 걸어갔다. 큰 딸은 자꾸만 어디냐고 물어보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냥 따라오면 될 것을. 뭘 저리도 물어보는지.
통증 클릭 닉이라는 간판을 보더니 "정형외과가 아니네요?"라는 말이 왜 이상한데 데려왔느냐고 따지는 말투로 들렸다. "왜? 다른 데 갈까?" 살짝 떠보았더니 아니라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내려 접수하는 동안 내 딸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잘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혹시, 큰 병이면 어쩌지. 가스나, 돈 아깝다고 실비보험 하나 들지 않고. 어휴, 내가 못 산다.
누가 그놈한테 시집가서 고생하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져 몰래 눈물을 훔쳤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을 이리저리 눈으로 둘러보더니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큰 딸은 진료하기 전 엑스레이를 찍고 나왔다.
"어머, 어머님이랑 따님이랑 닮았네요. 눈매가 똑같아요."
좋은 소리인 걸까. 나쁜 소리인 걸까. 난 왜 큰 딸이랑 닮았다고 하면 이렇게 싫어질까.
내 삶을 닮을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딸아이 이름이 호명되자 함께 들어갔다. 도대체 얼마나 안 좋은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다.
나도 며칠 전 러닝머신에서 미끄러져 왼팔을 다쳤다. 치료 중이라 먼저 진료를 받으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설명 들었다. 딸이 걱정할까 봐 다친 것은 어제 살짝 알려주었다. 걱정하는 딸 목소리에 무조건 괜찮다고 했는데 오늘 다 들키게 생겼다. 석회질인가 뭔가 보이다고 하고 퇴화 중이며 다친 곳은 인대 쪽이 늘어나 염증으로 당분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 알게 타고는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영 모르겠다.
나을 때까지 병원에 오라는 소리겠지.
걱정된 딸이 진찰받기 시작하였다.
몸이 유연하다는 의사 말에 '그래, 우리 큰 딸이 한 유연하지.' 하며 내심 좋았는데 유연한 것이 좋은 건만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한숨이 나왔다. 의사는 엑스레이 검사지를 보며 최악의 경우 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육 개월 동안 방치한 것이 큰 화근이라고 했다.
'가스나. 제때 좀 치료받지. 어이구 이 미련 곰탱이'
작은 딸도 허벅지를 다쳐 작년에 큰 수술하고 절뚝거리는데 너마저 팔이 잘못되면 어쩌란 말이고.
에고. 내 팔자야.' 갑자기 몸을 잘 간수하지 않는 아이들이 밉고 속상했다.
진찰이 끝나고 초음파 검사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딸이나 엄마나 둘 다 진료복을 갈아입고 순서대로 초음파 검사를 하였다.
난 한 버 해봤기에 걱정이 덜 되었지만 큰 딸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남편이 암으로 판명될 때 그 큰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고 작은 딸 허벅지 다친 것을 알았을 때 그 불안 역시 잊지 못하고 있다. 제발 이 아이만큼은 크게 안 다치기를 바라며 몰래 지켜보았다.
초음파로 검사하면서 팔을 여기저기 올려본 결고 다행히 정말 다행히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될 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안심되었다. 오른팔이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아이가 잘 못되면 꼭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찮다는 말을 듣기까지 두근두근하는 심장소리가 나를 더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다.
'괜찮다'라는 말이 이렇게 희망적으로 들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주사를 세 군데 맞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 소리에 날카로운 것에 찔린 듯한 통증이 왔다.
만약 억지로라도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 팔 병신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데려오길 잘했다는 칭찬을 나에게 여러 했다. 물리치료하기 위해 먼저 침상에 옆으로 누운 딸은 잠이 오는지 물어보는데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수면 마치제를 맞고 말하는 것처럼.
애처로웠다. 안쓰러웠다. 저 작은 몸뚱이로 도대체 뭘 하는지 미우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물침대에서 마사지받는 동안 아이 몰래 빨리 진료비를 계산하였다.
이럴 때는 돈이 최고다. 내가 아직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아도 이렇게 내 돈으로 치료해 줄 수 있으니.
부스스 헝클어진 모습으로 일어난 큰 딸은 치료비 낸다고 접수처로 향했다.
이미 계산했다는 말에 왜 그랬냐고 자기가 계산해야 하는데 하며 미안해한다.
아직은 나도 돈이 있으니 괜찮다며 내일같이 물리치료받으러 오자고 하며 집까지 걸어갔다.
혼자 걸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가더니 이렇게 같이 가니 말동무도 되고 빨리 도착하였다.
자기 집으로 가는 딸 뒷모습을 보며 아무도 없을 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휴 딴 집 자식들은 다 잘만 살던데.
저것은 대학까지 나온 게 뭐가 아쉬워서 저렇게 사는지 가슴이 찢어진다.
내 말대로 했으면 저렇게는 안 살 건데. 새초롬한 게 누굴 닮았는지.
정말 나랑 안 맞다. 불편하면서도 밉고 미우면서도 불쌍하고 애처로운 큰 딸.
너만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걸 아는지........
그래도 다행이다.
크게 아프지 않다고 하니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이제 진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