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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Nov 27. 2022

고모부가 차려주신 마지막 아침밥





2021. 3. 30. 화요일



봉화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그제 오후, 서울 병원에 오셨다는 얘길 듣고 뵙기를 청하였으나 어차피 면회가 안된다하여      

"내일 오전에 고모 얼굴이라도 뵐게요."     

하고 어제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부지께 전화가 왔다.     


"니 안가도 된다. 한 시간 전에 돌아가셨단다."     


십년에 한 번도 겨우 보던 고모부 얼굴을 돌아가시기 전에 굳이 뵙고자 했던 것은, 사회생활 20년을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고모부의 배려와 배포 때문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9년 11월 초, 

봉화에 촬영을 갔을 때였다. 탄현에서부터 봉화까지 내리 대 여섯 시간 동안 버스에서 누워 자고 있던 나는, 막내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청에 도착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막내 작가가 세상 어딨냐능. 생각해보면 나랑 일했던 언니들이 천사였다 흙;)     

군청 무슨 무슨 과장님이셨던 고모부께서 등장, 버스 안에서 자고 있던 나를 친히 깨우셔서 인사하시고 저녁에 촬영을 마치면 어디 어디로 밥을 먹으러 오라 하셨더랬다. 그것도 촬영팀 모두를 데리고!!   

그 날 촬영을 마치고 간 곳에는 우리 예쁜 막내 고모와 아침에 나를 깨워주신 고모부와, 태어나서 처음 본 송이버섯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아마도 자루째 실어나른 것 같다-


막내 고모는, 

내가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대 여섯 살 때쯤 포항 우리 집에 꽤 오랫동안 와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작고 하얀 얼굴에 웃는 것이 너무나 예쁜 고모, 외갓댁이 포항이라 자주 보던 선이 굵은 막내 이모나 청림의 이모와는 달리 오밀조밀 어여쁘게 생긴 막내 고모가 좋아서 꼭 붙어 손잡고 안기고 다녔던 기억만 있다.

고모가 결혼한 후에는 고모를 자주 볼 일이 없었다. 아빠는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군인이었던데다가 고모부는 봉화 사람이라 고모가 봉화로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대로 양반집 아들”이었던 고모부는 명절에 고모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오시곤 했는데 우리 식구와 시간이 맞으면 고모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조카가 일하러 왔다고 함께 온 사람들 30 여명을 굳이 비싸고 귀한 송이 챙겨 먹여가며 (그것도 배 터질 만큼 말이다) 챙길 일인가 싶은 건 약 10년쯤 지나서 든 생각이고.... 그때는 어릴 때라 마냥 송이향과 맛이 신기하고 좋아서 헤헤거리며 받아먹기만 했다. 의례적인 말로 "감사합니다~"하고 하루도 아니고 이틀 저녁을 얻어먹었더랬다.

몇 해전 미스터트롯을 할 때 설운도 쌤을 만나서 그 때 기억하시냐, 우리 ‘좋은 세상 만들기’란 프로그램에서 한번 만났었다~ 송이 엄청 많이 먹은 거 기억하시냐 여쭈니 기억난다 하셨다. 그렇게 송이 많이 먹은 날이 없었다며. 그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더라니?!


나라는 인간이 본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망각이 쉬운 년이라 그 후로 봉화까지 갈 일이 없고 경조사 아니면 고모부 뵐 일 없어 잊고 잊고 잊고 지내다가.... 아프시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뜬금없이 그 날이 생각나더라.     

그냥.

지나서 생각해보니....


고모부 그 마음. 

깡촌 시골까지 온 도시 조카에게 군청에서 일하는 고모부가 내어줄 수 있는 가장 큰 마음을 내어준 것이었는데, 스태프들에게 우리 조카 잘부탁한다.. 어쩌면 귀한 송이로 "뇌물"주신 것이었는데, 어렸던 나는 그 마음이 뭔지 몰랐고 정성도 귀함도 배려도 몰랐던 어리석은 년이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꼿꼿한 선비들이 많기로 유명한 봉화에, 그러한 가풍의 영향으로 사셨다던 고모부는, 병을 얻고 치료를 받으시다가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으신 후, 그 옛날 선비들처럼 곡기를 끊고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가신 고모부께서

2021년 3월 30일. 나의 아침밥, 나의 곡기를 주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 5. 고모부의 사십구제날. 비가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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