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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Nov 26. 2022

정치적으로 올바른 집콕생활

아침에 든 백만가지 생각




2021. 7. 14. 수요일     


잔멸치 견과류 볶음, 명란구이, 오이지, 묵은 김치 볶음, 근대 된장국...

오늘도 건강한 나의 아침밥.


요즘 많이 쓰고 있는 식판 같은 접시에 담았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게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설거지가 산더미다. 혼자 사는 년이 식기 세척기에 눈독을 들였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혼자 사는 내가 설거지에 치이는데 재택근무와 격리 때문에 온 가족이 집콕 하고 있는 다른 집들은 오죽하겠나? 설거지만 산더미가 아니라 집안일 자체가 핵폭탄급일거다. 때가 때인지라 청결에 애써야 할테고 결국 팬데믹 세상에 죽어나는 사람은 엄마다. 간혹 집안일을 아주 잘하는 아빠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아, 그것은 늘 들어만보았지 실제로 본 일이 없어서 마치 유니콘 같달까?    

  

설거지, 빨래, 청소.. 제가 아내보다 잘해요!     

라고 얘기하는 어느 제작사의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와 일하며 지켜본 결과, 잘하면 뭐하나? 집에 안가는데? 그가 가사를 잘해도 어쩌다 집에 가면 잠자기 바쁘고 그 집 애들이 가사를 할 리 없으니 결국 그 일은 아내가 할 것이다. 그리고 가끔 한 번씩 하면서 “나 잘하지?”라고 능청을 떨 것이라 예상됐다.      


모든 가족이 집에 있다.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을 받고 엄마와 아빠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이상하게 밥은 왜 엄마만 챙기고 애들이 어지럽힌 거실과 방은 엄마만 치울까? 아빠는 애들과 놀아주는 것이 일의 전부일까? ‘아빠는 요리사!’ 시전하며 주방에 한 번 들어가면 난장판 만들고 ‘요리는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네가!’ 하며 내빼는 진상, 이거나 저거나 좀 같이 하자 얘기하면 청소는 로봇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왜? 하며 쳐다보는 눈ㄲ... (안그런 아빠한테는 죄송. 내 주변에는 다들 그래서 말이다)      


기계 있다고 기계가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한다. 

함께 같은 공간에 살면 함께 보살피고 치워야 하는 법. 청소기 충전이라도 하는 시늉하고,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 개어 보기라도 하고, 식기 세척기에 그릇도 좀 넣어보자. 먹는 것도 매번 매 끼니 같이 먹다 보면 질릴 수도 있으나 그게 식구니 감수하고, 정성이 들어갔건 귀찮아서 대충했건, 만든 사람의 성의와 마음도 알아차리길 바란다. 먹는 거 좋아하고 차리는 것 좋아하는 나도 혼자 매 끼니 차려 먹는 게 매번 쉬운 것은 아니거든. 차려주는 사람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조용히 다음 끼니는 직접 해 먹던가, 사다 먹던가, 굶어라. 이런 시절에 답답하고 속상한 건 당신만이 아니니까.  


    

그러한 와중에 아빠가 밥투정을 하셨다네? 

엄마가 한껏 독이 올라 어제 왔다 가셨는데 우리 아빠는 참 간도 크셔. 그 대단한 <삼식이>도 아니고 <종간나새X> (- 종종 간식까지 챙겨먹는 나쁜 새X – 아빠를 이렇게 칭하는 건 좀 미안한 일이지만 ‘사회적 별칭’ 뭐 그런 거니까! 사실 엄마랑 나만 쓰는 거니까.. 라고 우겨본다) 에다가 어제 먹은 반찬 또 줬다고 밥투정을 하셨다고 한다.      


"아빠 밥 차려 주지 마라."

     

과연 오늘, 우리 아빠는 엄마한테 밥을 얻어 먹었을까?     


아빠! 밥 투정하고 그라믄 안된다! 마 입꾹다물고 드시라카이!


오늘 아침, 아빠는 밥 투정을 했을까 안했을까?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별일이 없는 것도 같고? 

팬데믹, 정치적으로 올바른 한 집 생활을 위해 가사노동분담 철저히, 밥투정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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