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난 음식 추억
여의도 KBS 신관 앞 스카우트 빌딩 지하에 죽집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타의 브랜드 죽집과는 좀 달랐고 이런 저런 종류의 죽과 누룽지죽, 북어국을 팔았더랬다. 그 죽집에 자주 갔던 때가 있었는데 주주클럽을 하던 약 20여년 전, 내가 20대의 6년차 작가였을 때다. 교양과 예능의 사이,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쿵 교양 시스템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녹화 전날은 누구라도 밤을 샜고, 아이템이 안잡히거나 꼬여도 밤을 샜고, 촬영을 해와도 편집구성안 잡느라 늘 밤낮 없이 사무실에 있었다. 해외 아이템을 맡았던 나로서는 국제전화 때문에 더더욱 늦게 가는 날이 수두룩했다. (20여년 전이니 핸드폰으로 통화하다가는 당시 내 원고료보다 전화비가 더 나올 일.. 흙 ㅠ)
깔깔한 입맛을 덜어낼 아침밥 메뉴로 죽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난 주로 전복죽이나 북엇국을 먹었었는데 꼭 누룽지를 먹던 사람이 있었다. (누군지 기억이 안난다) 누룽지죽을 시키면 다른 메뉴에는 안나오는 계란후라이가 나왔다.
그래서 언젠가 추가로 주문을 했었나? 싶기도 하고.... 참 별 게 아닌데 계란 후라이 한 개 가 어떨 때는 엄청 큰 서비스고 그걸 또 돈 받고 준다 하면 언짢기도 하고. 아침밥 파는 식당에서는 그 하나로 제대로 식단을 짠 것 같은, 뭔가 제대로 배우신 분이 하는 식당 같은 느낌이 드는 사이드 메뉴가 계란 후라이다.
촬영날 밥차에서 아침 먹을 때 계란 후라이 주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느무 사랑스러운 배려라니. - 절대 두 개는 안주심. 1인 1개. 두 개를 받는 사람은 진짜 뭐가 있는 사람임-
20대의 그 때는 딱히 밤을 샜다고 해서 입이 깔깔하지도 않았고 늘 아침을 먹는 나로서는 그냥 시간 돼서 먹는 끼니인지라 음식물 섭취가 힘들지도 않았기에 밤 샜다고 죽집 가는 언니들이나 팀장님이 그닥 탐탁치 않았다.
그래서 자주 죽도 끓여 먹는다. (그 때 죽 먹는거 이해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늙을 줄 알았다면 안그랬을 거예요~) 오늘은 그나마도 끓여놓은 죽도 없고 당장 배는 고프고 스카우트빌딩 지하의 계란 후라이 한 개가 부러운 누룽지 죽을 흉내 내어 한 상 차려 먹었다.
차려 먹고 나니 깔깔한 입맛 치고, 죽상 치고, 뭔가 거한 밥상 느낌이다. - 아. 나는 맨날 뭐가 이렇게 과할까? (세 개 아닌게 어디야?! -.,-) -
오랜만에 회의하러 나간다.
커피 한 잔 하면서 설친 잠을 제대로 깨봐야지. 병원에 들러 약 처방을 받고 회의를 하고 숙제를 안고 돌아오겠지? 늘 하는 일, 별 것 아닌 일상.. 그랬던 출근이나 회의가 "오랜만"이다.
별 것 아닌 계란 후라이 한 개의 "부러움"처럼, 익숙하지 않은 착붙이 같은..?
혹시 지금 나,
피토하는 회의..가 부러운...거....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