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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Oct 24. 2022

먹을 福 있는 자의 돔베기와 피데기

아침에 든 백만가지 생각


2021. 6. 23. 수요일 


내 나이가 두 번 갔다 왔어도 될 나이라고도 하두만 나는 남자복이 없는 건지, 남편복이 없는 건지 한 번도 못 해본 결혼 때문에 엄빠의 친구들이 그렇게 나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다지? 다행히 아빠 형제들은 본인 딸들 중 하나씩도 안 간 이들이 있어 나만 두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 딴 말을 안하는 것 같지만 엄빠 친구들은 사정이 달라서 길지도 않은 질문을 하신다지?


“딸은?”


의도한 바는 아니나 어쩌다보니 결혼도 안해서 남편도 없고 애도 없다. 방송작가로 20년을 넘게 일했는데 모은 돈도 없다. - 사실 방송하면서 돈을 모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박한 원고료를 받으며 언제 일이 없어질지 모르는 프리랜서가 돈을 어떻게 모으냐고! 개 중에는 재테크를 잘해서 이래 저래 경제력을 가진 분들도 계시긴 하다만 여튼 난 예외다 – 그래서 집도 없다. 어린 시절, 술에 탐닉하여 운전 면허가 없어 차도 없다. 면허를 따면 분명히 내 성격에 차를 살테고 차를 사면 음주 운전 할 확률 102%라고 확신하여 아직까지 면허시험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집이나 차를 사야할 만큼 큰 돈을 써야할 일도 없기 때문에 빚도 없다. 그래서 난 나를 “다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참 매력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다니? 이토록 비워진 사람이 또 어딨단 말인가?


난 사람복이 있다.

(근데 왜 결혼은 못했어? 라고 묻지 마라. 그거랑은 달라!!!)

다른 동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무서운 선배들을 만나 고생했다거나 어이없는 후배를 만나 힘들었다던데 난 무섭고 이상한 선후배와 일한 적이 없다. 간혹 나와 함께 일했던 선후배 작가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험담을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대부분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얘기를 하면서 선생님들 욕을 많이 하던데 나는 정말이지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특히 중고등학교때 선생님들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의 욕구와 호기심을 적절히 채워주셨고 어떤 면에서 지금 나의 업이 된 방송도 그 때 그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보살핌 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복이 있기 때문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귀인을 만나는 어떤 때가 있다는데 나는 그냥 다 귀인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이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으며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  


특히나 난 먹을 복이 있다.

어릴 때부터 가리는 음식 없었고 뭐든 맛있게 잘 먹었기 때문에 어른들은 내게 뭘 먹이는 것을 좋아했다. 날 때부터 식탐이 있었는지 보행기로 방바닥을 쓸고 다닐 때부터 아빠의 계란 후라이를 뺏어 먹었고 식당에서는 ‘잘 먹는 애기’로 눈에 띄어 사탕을 하나 더 얻어먹어도 먹었다.

이것은 작가로 첫 출근하는 날도 증명됐다. 점심은 대부분 회사 식당에서 먹는데 내가 출근하던 첫 날, 프로그램 에필로그의 나레이션을 하는 성우 선생님께서 방문하셨다. 약속을 하고 오신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여튼 에니골 어느 양식당으로 가서 코스요리를 먹었다니? 에피타이저로 달팽이요리가 나오는 정찬이었음. 먹을 복이 있으면 사회 생활의 첫 끼니를 그렇게 시작한다는거다.


먹을 복이 있고 인복이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철철마다 먹을 것을 갖다준다.

제주에 자주 가는 동네친구는 제주산 고등어, 갈치, 옥돔 은 물론 뿔소라, 홍해삼에 겁나 큰 다금바리, 돌돔 등등 각종 물고기를 채워 주신다. 내가 물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아는 지인들은 생일 선물로 굴비, 전복, 한우를 비롯해 각종 곡식과 채소를 보내준다. 살림하는 지인들은 자기 집에 필요한 먹거리를 사면서 물건이 좋아 생각나서 보낸다며 투척해준다. 어떤 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품목의 재료를 박스로 보내줘서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눌 때도 있고 그걸 또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냉장고는 늘 꽉 차있다. 혼자 살지만 냉장고가 두 개인 이유다.



어제는 포항 사는 사촌언니가 돔베기와 피데기를 보내주셨다.

언니가 일전에 일산에 일이 있어 우리 집에 몇 일 머물다 갔는데 포항꺼 먹고 싶은거는 없나? 물어보시길래 대뜸 돔베기 못 먹어본지 오래 됐다고 했더니 돔베기 보내시면서 피데기도 같이 보내신거다.


돔베기는 경상도 지방에서 제사나 차례상에 올리는 상어고기인데 커다란 상어의 살을 네모 반듯하게 잘라 간해 놓은 것이다. 적으로 굽기도 하고 다진고추, 다진마늘 올려 쪄서 먹기도 하고 깍둑 썰어 탕국에도 넣는다. 제사나 명절 차례에 안 간 지 10년이 넘어 돔베기 못 먹은 지 10년은 된 것 같다. 상어고기는 서울에서 팔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일까 싶지만 어릴 때부터 먹어 버릇한 나같은 사람은 이상하게 때되면 먹고 싶다. 돔베기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말이다. 언니가 보내준 걸 먹어보니 옛날 간보다는 덜 짜다. 옛날엔 엄청 짜고 화한 맛이 더 강했는데 말이다.


더 귀한 애는 10년만에 만난 돔베기가 아니라 피데기다.

언니가 보내준 귀한 나만의 피데기

피데기는 서울말로 반건조 오징어렸다! (‘피데기’가 더 맛있는 말인 것 같다. 반건조 오징어..는 뭔가 과학 실험실 같잖아?)

이 피데기로 말할 것 같으면! 오징어 배 하는 언니의 남편, 그러니까 사촌 형부가 올해 첫 조업을 나가 잡으신 오징어를 직접 손질하여 말려 보내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몸이다. 그러니까 돈 있어도 못 사먹고 제 아무리 만수르여도 없어서 못 판다. 그저 나한테만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피데기다.  

게다가 아직 오징어가 말릴 만큼 크지 않아 요즘 잡는 애들은 횟감이랜다. 그러니 얼마나 연하고 야들 야들하겠어? 그 놈을 살짝 말려놓았으니 그 맛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이 밥상은 오늘 아침이 아니라 어제 저녁밥이었는데 택배가 오자 마자 넘후~~ 흥분하여 눈물을 삼키며 먹었다능! 돔베기에 밥을 먹고 피데기 구워 맥주를 한 잔하고, 두 잔 하고, 세 잔 하고...... 혼자 신나서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아침이 됐다는 전설!

 

"언니, 형부님 귀히 여기며 잘 먹겠습니다!!!"




'먹을 복 있는 자'는 먹을 것이 늘 감사하다. 내 밥상까지 오느라 귀하게 자라 준 재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애지중지 돌보신 농부들의 노고에, 가공과 포장과 유통 등 수많은 노력과 애씀의 손길에 감사하며 오늘도 밥상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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