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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Nov 24. 2022

만두는 배신하지 않는다

아침에 만난 음식 추억


2022. 10. 17. 월요일     


만두는 사랑이다. 

만두는 세상 모든 먹을 것을 품어 찌고 굽고 튀기고 끓이고 별 짓을 다해도 맛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만두는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완전 식품인데다가 만두소 손질을 어떻게 하느냐, 조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재료의 식감과 맛도 살릴 수 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불호가 거의 없는 음식이다.   

   

설은 아니지만 (올해 설은 꽤 지났고 다가올 설도 멀었지만) 오늘 아침은 만둣국이다. 비비고 평양만두로 끓인 만둣국에 엄마가 작년 이 맘때 주신 순무김치를 곁들였다.  - 담은 날 바로 주셔서 안익었길래 익혀 먹는다는 걸 깜빡하고 손도 안댄채로 있던 걸 발견하고 눈물 찔끔! 긴 얘기는 생략하겠다. 또 들쭉 날쭉한 호르몬 변동 감정 상태 고백일테니....-     




만두를 보면 늘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안 본지 족히 20년은 된 것 같은 하영이다. 아마 걔가 결혼하고 안 본 것 같으니 20년은 안됐나? 


여튼 하영이는 만두를 엄청 좋아했다. 나보다 한 살 적은 약사 친구였는데 20대 초반, 나우누리 작은 모임 (‘나우누리’래 세상에나!!! ㅋㅋㅋㅋㅋ)에서 만난 검은잎 현경이의 하숙집 후배였던 하영이는 사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것 같지만 인연이란게 묘해서 내가 성인가출 (이 얘기는 나중에 하겠다 ㅋㅋㅋㅋㅋ) 하여 연희동에 기거하던 시절, 같은 건물에 살기 이른다.     


하영이는 그 전에 학교 앞 하숙집에 살았었는데 솜씨 좋은 하숙집 아주머니가 챙겨주는 밥이 좋아 남들이 자취방을 구해 하숙집을 탈출할 때도 거기 남아있었다. (올해 베스트셀러라는 ‘불편한 편의점’의 무대가 된 청파동 그 골목에 살았었다) 그러다가 나의 밥을 먹어보고는 먹을 만 했는지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왔다. 나 말고 당시 내 룸메의 친척들이 주던 김치 등등 밥 해 먹는 언니들이 같은 건물에 산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을거다.

  

하영이는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주신 만두 얘기를 가끔 했었다. 예민하고 몸이 약한 하영이가 밥을 거르면 하영이가 좋아하는 만두를 빚어 쪄주시기도 하고 만둣국도 끓여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댄다. 그 당시 우리는 만두를 따로 빚지는 않았지만 하영이가 사온 유명한 만두집의 만두를 매번 게 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더랬다.     


내 기억에 난 아마 그 전엔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명절에도 만두를 빚지 않는 가풍이 있는데다가, 집에서 만두를 빚어 먹는 기억은 대충 한 손에 꼽는다. 하영이 덕분에 갖가지 만두에 입맛을 들인 후에 만두에 눈을 떴달까?


중국에서 일할 때는 정말 여러 종류의 만두를 먹을 수 있어 신났었다. 

계란부추만두, 고수만두, 옥수수만두, 궁채만두, 토마토계란만두, 그리고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재료의 만두피... 수십 종류의 만두 메뉴가 있던 만두 가게의 만두를 다 먹어보겠다던 후배들과 나의 목표를 채우지도 못하고 석 달의 일정이 끝나버린 기억은 여전히 아쉬운 과거다. 

새벽에 나가면 만두 파는 푸드 트럭 (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포장마차 같은 느낌이긴 하다)에 김이 올라 익어있는 아침 식사용 소룡포도 맛있었고 그저 밀가루 떡 같아서 생소했던 만토우도 어느 날 그리운 맛이 될 정도로 매력있었다. 하다 못해 냉동만두까지도 다양하고 맛있어서 나를 기쁘게 했던 만두 천국 중국에서 하영이 생각이 참 많이도 났었다.     


아마 하영이가 아니었다면 만두를 그렇게 즐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만두의 세계로 인도해 준 하영이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하영이 연락처도 모른다. 하영이와 결혼한 창환이는 내 친군데 참나, 그러고 보니 희한할세? 창환이하고도 연락을 안한지 오래 됐으니? 아니 이 새끼는 결국 우리 때메 결혼까지 해놓고 연락이 안된다니? 괘씸한걸?     

가끔, 아주 가끔, 몇 해 전까지... 창환이 생일이 좀 특별한 숫자인 관계로 생축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답을 했었는지 안했는지 조차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래도 살아는 있는 것 같다. 건너 건너 가끔 들리는 소문에는-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니 대단히 괘씸하기 이를데 없구만!    

 

하지만 뭐 어때? 

인간의 인연이란 때론 그렇게 지나가기도 하는거지. 연락이 되지 않아도 그냥 어디선가 자신의 어느 포지션에서 잘 감당해내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약 한 달 후, 후기.
 

집을 이사하고 검은잎 현경이와 현경이 때문에 알게 된 인연으로 무려 25년째 친구가 된 은재가 집들이를 왔다. 현경이와 결국 만두 얘기, 하영이 얘기, 창환이 얘기로 이야기가 이어졌고 창환이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을까?"

"에이~ 안 받을거야~"

"정말 안 받을까?" 

"받겠냐?"

"어머 어머!! 받았어, 받았어!!! 창환아~~!!! 이 눔아!!!!!"  


그렇게 십 수년 목소리도 못들었던 친구놈과 통화를 하면서 못된 놈이라고 욕하며 잘있음을 확인하고 통화를 마쳤다. 만두를 볼 때 마다 하영이 생각이 난다는 얘기도 던졌다. 반가워는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가 알아서 때되면 연락하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앞으로도 만두를 먹을 때 마다 하영이 생각이 날 것이다. 뭐 연락 못하고 살면 어떠냐? 어딘가에 살아있으면, 그러면 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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