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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an 01. 2024

2023년을 보내며

우직하게, 치열하게.

살면서 스스로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정체되어 있어도 확신이 생기던 순간들. 군대 전역 후 대학교를 다시 진학하고자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던 때. 고려대학교를 다니며 서울의대 편입학을 준비하던 때. 그 두 순간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에 믿음을 가지고, 편법을 쓰지 않고, 그 길에 전념하는 것.


군대 전역 후 공부를 하던 때도 그랬다. 군대에서 이 년 동안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일 년 만에 대학교를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니 어줍잖게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친구, 친척, 명문대로 수두룩 했던 카투사 동기 및 선후임들.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방식대로 하기로 선택했다. 그래서 그냥 혼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내가 맞다고 생각한 방식대로 공부했다. 학원도 가지 않고, 강의도 듣지 않고. 대신 타협하거나 변명하진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일 먼저 도서관 문을 열고 앉아 "이게 맞다" 생각하고 그냥 했다. 그 결과, 한 과목에서 미끄러져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 년 만에 고려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를 다니며 서울의대 편입학을 준비하던 때에도 그랬다. 일단 서울의대 편입학에 대해서는 학교 내에 온갖 패배주의 있었다. "연고대는 안 뽑는대", "연고대 중에서는 SCI급 논문 몇 편씩 있어야 겨우 붙는대", "봉사시간은 1,000시간 이상이 있어야 한다던데." 나는 그런 말들을 믿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집단이 그런 하찮은 잣대로 사람을 평가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의학 분야에서 나름대로 철학과 꿈이 있었는데, 서울의대는 이를 인정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냥 내 방식대로 했다. 물론 대충 한 건 아니다.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 서울의대 면접이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다 했다.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결국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유일하게, 단 한 편의 논문도 없이, 몇 십 시간의 봉사활동 시간과 함께.


2023년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회사를 운영하며 내렸던 중요한 결정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은 변명하거나 편법을 쓰지 않았다. 정직하게 응당 해야 할 일들에 집중했을 뿐. 거짓으로 점철된 PR에 시간 쓰지 않고, 보여주기식의 성장에 에너지 쓰지 않고, 링크드인에 멋드러진 말을 내뱉는 데에 고민하지 않고, 솔직하게 팀원들을 대하며, 끊임없이 제품에 대해 고민하고, 몇 번을 뒤집어엎고, 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고객에 한 마디라도 더 들어보고자 노력하고, 우리를 선택한 고객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전해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종종 밤 늦게 퇴근할 때 빌딩 사진을 찍어서 모은다. 캄캄한 어둠 속에 유일하게 우리 사무실에만 불이 켜져있는 모습. 그렇게 찍어 모은 것만 수십 장이다. 빌딩에서 거의 매일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팀이 되었다는 사실이 팀원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매일같이 해가 질 때까지 고민하고 애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늦게까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과 우리 팀을 보면 묘한 두근거림이 생긴다. 조금씩 때가 오고 있다는 확신. 지난 삶에서 굵직한 도약을 만들어내기 전에 느꼈던 그 느낌.


나는 더 쉽고, 접근하고 편하고, 저렴한 의료 체계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 2024년에는 그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직하게,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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