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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an 02. 2024

새해 목표에서 완벽주의 버리기

완벽주의 극복하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새해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 쯤 되면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부지런한 누군가는 벌써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을 수도 있다. 자기계발, 운동, 성취 등. 다가올 해에는 모두들 원하는 바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그런데 새해 목표를 세울 때 경계해야 할 지점이 하나 있다. 완벽주의다.


사실 완벽주의가 나쁜 건 아니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에도 신경을 쓰곤 한다. 일을 완벽하게 하겠다는 게 뭐가 잘못인가. 어설픈 심리 이야기를 전하는 비전문가들 중에는 완벽주의가 ‘지나치게 높은 기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당찮은 이야기다. 그것이 망상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높은 기준을 가지는 게 왜 문제란 말인가. ‘애초에 타고난 그릇대로 살자’는 주장을 할 게 아니라면, 높은 기준을 가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해 목표에 ‘성적 A+ 받기’가 아닌 ‘적당히 B+만 넘기기’라고 적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성적이 만약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라면 말이다.


문제는 완벽주의가 어디서 근거했는지에 있다. 이해를 위해 완벽주의를 건강한 완벽주의와 건강하지 않은 완벽주의, 두 가지로 나눠서 바라보자. 우선 건강하지 않은 완벽주의는 흔히 그것이 ‘부족한 나에 대한 과도한 대처 기제’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삶의 경로를 통해 ‘나는 부족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종종 자신이 부족하고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지심리학적 용어로는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이라고 한다.


이들은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만 집중한다. 일도 완벽하게 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 종종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하고, 실수를 했을 땐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점진적인 성취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성장의 과정에서는 불가피한 시행착오나 실패에 더 크게 집중한다. ‘완벽하게 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나는 그래야 해.’ 이들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물론 이 또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일단 일을 추진시키기는 하니까. 하지만 과잉보상으로 쌓아올린 완벽주의는 위태로운 모래탑과 같다. 일단 쌓아올릴 순 있겠으나 언젠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까지 완벽히 해낼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래탑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그 이후엔? 한동안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살다가 다시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 내가 부족해서 그랬어. 내가 더 잘하면 됐었어. 더 완벽하게 했더라면!” 깨달은 다시 모래탑을 쌓아올린다. 곧 무너지겠지만.


그렇다면 건강한 완벽주의란 무엇일까? 김연아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무너지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이들의 완벽주의는 과잉보상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뚜렷한 가치를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료하게 한 후 그에 전념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열정과 완벽주의인 것이다. 그러한 완벽주의에서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가치는 방향이지 달성해야 하는 결과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가치가 명료하고 지금 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전념하고 있다면 나는 충분히 나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니 실패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았던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가 있다. 기자가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라고 묻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다. 그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그뿐, 다른 고려사항은 없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건강한 완벽주의가 건강하지 않은 완벽주의에 비해 더 높은 회복탄력성을 만들고, 오히려 더 완벽을 만들어내고, 실제 더 큰 성취를 만들어낸다. 다시 한번, 완벽주의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당신도 완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새해 다이어리에 “완벽하게 하기”라고 쓰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서 생각과 거리를 두고 그 생각을 바라보자. 나의 완벽주의는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과 거리두고 가치로 나아가기. 이것이 ‘디스턴싱’이 전하고자 하는 전부다. 완벽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디스턴싱(Distancing) 팀을 이끌며 인지치료사와 함께 '거리두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울, 불안, 무기력, 번아웃 등의 문제로 고민 중이라면, 아래에서 디스턴싱을 만나보세요.



출처: https://orwell.distancing.im/blog/perfect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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