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치료
우울 증상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증상만큼 어려운 것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떤 도움을 받을지 결정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심리치료가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꾸준히 상담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아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효과를 봤다고 말한다. 증상이 비교적 경미하면 상담치료만 받아도 되고, 약은 심각한 사람들만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 연구 결과는 어떨까?
항우울제 vs. 인지행동치료, 17가지 증상을 중심으로.
우선 우울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법은 항우울제와 인지행동치료다. 정신건강 전문가들 역시 둘 중 어떤 게 더 효과가 좋은지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모아서 정리한 유용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정신의학 저널인 World Psychiatry에 ‘항우울제 대 인지행동치료의 우울 증상별 효과(The symptom-specific efficacy of antidepressant medication vs.cognitive behavioral therapy in the treatment of depression)’라는 제목으로 실린 논문이다. 해당 논문에서는 이전에 선행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 17건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분석했다.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란 치료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대상자를 두 그룹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하는 방법이다. 임상 연구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로 평가받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우울증에서 항우울제와 인지행동치료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우울증 환자를 약물 또는 심리치료 군에 무작위로 배정해서 효과를 비교했다. 항우울제 및 인지행동치료에 각각 570명, 500명이 배정되었고, 환자들은 치료의 전후로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17가지 증상에 대해 평가 받았다.
대부분의 증상에서 항우울제와 인지행동치료는 비슷한 효과를 보였다
그 결과, 17가지 중 12가지 증상에 대해서는 두 치료법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즉, 항우울제를 복용한 군과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군 모두 해당 증상에 대해 동등한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울증에서 흔히 동반되는 불면증, 활동 저하, 신체적 불안 증상, 소화기 및 비뇨기계 증상, 체중 감소 등이 포함되었다.
일부 증상에서 항우울제가 다소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나머지 5가지인 우울한 기분, 죄책감, 자살 충동, 정신적 불안 및 일반적인 신체 증상에 대해서만 항우울제가 인지행동치료보다 더욱 큰 개선을 보였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더 나아가, 해당 증상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환자군에서만 인지행동치료보다 항우울제가 더욱 큰 개선을 보였다. 애초에 해당 증상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던 환자군에서는 두 치료 방법의 효과가 동등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핵심 메시지 3가지
이 연구에서 배울 점은 아래와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중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효과가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개개인의 증상 및 임상 양상에 따라서 적합한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연구에서 항우울제 또는 인지행동치료에 배정된 환자군 간에 증상 심각도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증상이 경하면 상담치료를 받고, 심각하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흔한 이분법적 사고는 사실이 아니다.
3. 두 방법 모두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 효과가 입증되었다. 어느 쪽이든 개개인에 맞게 꾸준히 지속한다면 좋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될까? 항우울제는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그 증상 완화만으로 삶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우울증에서 회복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편 항우울제를 복용함에도 불구하고 디스턴싱을 통해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심리적인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즉, 이 우울과 불안은 어떻게 해서 심화되고 있고, 나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우울과 불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연습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항우울제와 인지행동치료는 서로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또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는 연구도 제법 있다. 약물치료를 통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잡아주면서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해 우울증에 기여하는 잘못된 생각, 비생산적 사고를 교정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가장 중요한 건 한 가지 방법이라도 끈기있게 고수하며 문제를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이다. 디스턴싱도 좋은 방법이다. 디스턴싱은 디지털로 진행되는 인지행동치료지만, 최근 많은 문헌들이 디스턴싱과 같은 Guided self-help 방식이 대면심리치료와 동등한 효과를 낸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고,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는 이 방식을 아예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결국 무엇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고, 뭐든 하나 정해서 일단 최선을 다해보는 게 첫 시작일 것이다.
참고 문헌
Boschloo L, Bekhuis E, Weitz ES, et al. The symptom-specific efficacy of antidepressant medication vs.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in the treatment of depression: results from an individual patient data meta-analysis. World Psychiatry. 2019;18(2):183-191. doi:10.1002/wps.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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