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수면을 통해 우울감을 낮출 수 있다
"너무 방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햇볕도 좀 쬐고..."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과학적인 이야기일까? 정말 충분한 햇볕을 쬐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고, 햇볕이 부족하면 쉽게 우울해질까? 아마 그런 것 같다. 일조량과 우울증 간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실제 일조량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우울증도 있다. 가을, 겨울에 주기적으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 등의 증상이 찾아오는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일조량이 줄어드는 패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북유럽이나 미국의 알래스카처럼 위도가 높아 하반기에 일조량의 감소가 더욱 큰 지역에서 계절성 우울증이 더욱 흔히 나타난다.
그렇다면 일조량은 대체 어떠한 원리를 통해 우울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 주제와 관련하여 세계적인 정신의학 학술지인 JAMA Network Open에 흥미로운 연구가 게재되어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밝은 빛 노출, 우울 증상, 그리고 수면 규칙성(Environmental Bright Light Exposure, Depression Symptoms, and Sleep Regularity)’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본 연구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서 이루어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약 6,700명의 성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밝은 빛 노출, 우울 증상 및 수면 규칙성 간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모든 참가자는 손목에 부착하는 시계 모양의 기기인 ‘액티그래프’를 착용했는데, 이를 통해 특정 조도 이상의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과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얼마나 일정한지 반영하는 수면 규칙성을 측정했다. 또한 우울증 선별검사(PHQ-9)가 담긴 설문지를 배포하여 우울 증상의 심각도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과 설문지를 통해 보고된 우울 증상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음의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다시 말하면,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우울 증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조량이 부족해지면 계절성 우울증에 이환될 위험이 커진다는 선행연구의 결과와 일맥상통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추가적인 통계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빛 노출과 우울 증상의 연관성은 수면 규칙성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과 수면의 규칙성 간에는 매우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된 것이다.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이 늘어날수록 수면이 더욱 규칙적으로 변하고, 이러한 일정한 수면 패턴이 우울 증상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밝은 빛에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우울 증상이 감소하는 경향은 수면 규칙성을 조정한 뒤에는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았다. 즉, 수면 규칙성 없이는 일조량과 우울 증상 간의 관계는 더이상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빛 노출이 우울 증상을 직접 낮춘다기보다는 수면 패턴을 규칙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우울 증상의 경감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이처럼 규칙적인 수면은 우울증을 예방하고 기분 조절 능력을 유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순히 햇볕을 많이 쬐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해서 건강한 수면 습관을 가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에 나갔을 때 시차 적응을 잘하려면 야외 활동을 통해 충분히 햇볕을 쬐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생체시계는 햇볕의 양에 따라서 움직인다. 실제 우울증에 쓰이는 광치료도 수면과 일주기 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다양한 증상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마음도 울적하고 무기력해진다면, 일조량과 수면 패턴에 주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참고 문헌
Wallace DA, Redline S, Sofer T, Kossowsky J. Environmental Bright Light Exposure, Depression Symptoms, and Sleep Regularity. JAMA Netw Open. 2024;7(7):e2422810. Published 2024 Jul 1. doi:10.1001/jamanetworkopen.2024.2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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