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Jun 17. 2024

책을 읽어가며 글을 써 가며

알라딘 헌책방을 돌아다니다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대학생 때 읽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표지가 바래지 않은 책이 헌책방에 나와 있는 것을 보니 혹시 아직도 판매가 되고 있는 책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아직도 판매 중이다. 노하우라고 할 것도 아닌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라 별로 두께조차 나오지 못하는 빈약한 내용에다 사기에 가까운 제목 몇 번이나 당해본 결과 일본의 자기 계발서를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지만 이 책은 잔잔하게 지나온 이야기들, 책에 대한 생각 등을 전하는 내용이라 아예 일본 자기 계발서와는 다른 종류라고 생각하며 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서재로만 사용하는 건물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분야별로 나누어서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실적관리를 하면 여러 분야에 대한 책을 정말 골고루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건물을 짓더라도 서재로 쓰는 건 너무 내 경제력에 가혹한 처사일 것 같고 분야별로 같은 수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사람이 골고루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라 그런 생각은 모두 접었지만 몇 년이나 가지고 있던 꿈이다. 사실 으로 가득 채운 건물은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는 순간 아마 온도와 습도를 책이 조절해 주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책들은 엄청나게 상해갈 것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를 사용해서 서버실 관리를 하듯이 책이 안전할 수 있는 온습도를 사전에 만들어 주는 것이겠지만, 나는 서재를 만들고 싶은 것이지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어서 상상에서도 실제로도 모두 충족할 수 없것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또, 분야를 따져서 책을 읽는 건 보통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인데, 그럴 거면 그냥 몇 년에 한 번씩 자격증을 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문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다고 해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그런 책은 읽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은 일주일 동안 가두어 두고 시집만 읽게 한다고 해그다지 발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읽는 시 중에 마음에 와닿는 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결과로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 몇 편 머릿속에 남기는 정도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어떤 분야를 공부했고, 어떤 책을 읽었다고 연대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는 했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원하는 대로' 읽는 스타일이지, '읽어야 하는 대로' 읽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순서를 정해도 소용없고,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번에는 저 책을 읽어야겠다'되지 않는다. 한때는 방정식과 그래프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수학사에 대한 열 권정도 되는 책을 빌려다가 줄창 읽기도 했고 종교 중 어떤 것이 진리에 가까워 보이는지 보겠다며 이슬람의 역사와 기독교사, 성경, 증산도 도전 등을 일주일 동안 내리읽어 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재미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필요해서 읽는다고 해도 그 필요성이 보통 이야기하는 그런 "나중에 그 내용을 써먹을 수 있는 효용성"이라는 뜻과는 다른 의미다. '내 인생에서 언젠가는 읽었어야 할 책', 이 필요한 책이라는 말의 뜻이겠지.
내가 읽은 책에는 그리 많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특히 전자책으로 넘어오면서는 문장을 옮겨 적는 도 거의 없다. 다 읽고 나 여운이 남아 다시 읽으면서 표시를 하거나 하는 그런 것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종이책이라고 다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책을 많이 버렸는데, 그중에는 밑줄뿐만 아니라 여백에 글을 많이 쓴 책도 몇 권 있었다. 결국 생각이 달라지면서 동의하지 않는 책이 되었기 때문에 버린 것이겠지만 나의 흔적이 남은 책들이 아예 사라졌다는 사실은 마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던 시골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허전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나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데에는 그다지 의욕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단지 다시 읽고 싶으면 다시 읽을 때의 나를 위해 약간의 밑줄이라던가 하는 가이드를 책 속에 설치해 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을 나타내거나 딱지를 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책을 읽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다른 말을 하겠다.
나는 지식은 일천할지 몰라도, 배움은 더딜지 몰라도, 그래도 사람들과 살아가는 데에 예의를 지켰고 온화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떳떳하고 그래서 그런 인생에서 나오는 글을 죽을 때까지 쓰겠다,라고 하겠다. 지식을 전해줄 글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얼마든지 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써야겠다는 뜻 그 자체이다. 쓸 이유를 나열하며 이러이러하니 글을 쓰겠다,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것인데 아마도 이러이러한 내용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텔에서 글을 쓴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