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포트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들린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읽고 있던 책의 해당 페이지는 다 읽고 일어서려고 잠시 기다렸다. 얼마 전에 두 번째 권을 다 읽고 이제 간신히 구한 첫 번째 권을 읽고 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몇 줄 남지 않았다. 정보를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호흡이 중요하다. 수필도 호흡이 중요하긴 하지만 소설은 힌트처럼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것들을 넘겨 버렸다가 뒤에서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내용에 조금 더 맞춰줘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은 모카포트 앞에 앉아 있다가 끓으면 바로 끄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는 보글보글 소리가 나면 바로 일어나서 천천히 가스레인지로 가 불을 끄는데, 오늘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페이지를 넘어 다음 페이지 첫째줄로 이어지는 문장을 모두 읽고 나서야 천천히 일어났다.
가스불을 잠그고, 에스프레소 잔을 하나 들어 검지 손가락에 끼운 후 모카포트를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무게감을 느끼면서 다시 뒤돌아서 다른 손으로 선반에 걸려 있는 코르크 냄비받침을 꺼냈다. 옛날 유럽 동굴에서 발견되었을 듯한 동그란 물주전자 모양이 그려진 원형 냄비받침이다. 식탁 가장자리에 냄비받침을 놓고 그 위에 모카포트를 놓은 후 그 옆에 에스프레소 잔을 놓았다.
또르르르, 커피 따르는 소리가 가볍게 퍼졌다. 향기는 진작에 커피가 끓기 시작하면서 퍼지기 시작했고, 이제 소리와 합쳐지니 정말 커피를 마시는 시간다웠다.
책을 다시 펼치지 않고, 멍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읽던 내용도 모두 잊어버리고 커피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면...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일어나 키보드를 꺼낸다. 휴대용 기계식 키보드여서 뚜껑을 열고 뚜껑에 있는 홈에 핸드폰을 끼워서 잘 세운다. 주로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전자책은 충전 중이라 사용할 수 없어서 핸드폰에서 글 쓰는 앱을 실행시키고 키보드와 동기화를 한다. 블루투스 키보드라 그런 점은 참 편하다. 키보드의 연결을 두 번째로 설정했다. 첫 번째는 노트북, 두 번째는 핸드폰, 세 번째는 전자책으로 설정해 놓았다.
일요일 오후, 여유가 넘치는 낮, 커피 한 잔과 함께 글을 쓴다. 스타벅스 앱에서 열 두 잔을 마셨다며 쿠폰이 나왔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언젠가 쓸 날이 있겠지. 집에서 내린 커피의 고유한 느낌이 있다. 잘 짜인 커피숍과는 달리 아무렇게나 앉아서도 마실 수 있고, 에스프레소 잔에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렇게 분위기를 한껏 잡고는 키보드의 'ㅇ'을 서너 번 눌러서 앱에 찍히는 것을 확인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모카포트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들린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