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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Sep 21. 2024

습관을 유지하기 위한 습관

명절 연휴 동안 '글을 쓰려고 앉아야지'하고 생각을 하다가 결국 앉지 않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제 앉아서 글을 써야지'하고 생각하고서는 책을 꺼내 읽는 일이 반복되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만 빼고 뭐든지 한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운동도 비슷하게 미루다가 두 달 동안 한 번도 운동하러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집에서 팔 굽혀 펴기 정도만 하고 시간이 가 버린 것이었다. 휴대폰을 보건 책을 읽건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시간에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던가'이다. 이것은 마치 인류의 태생적인 기본 장착 사항 같은데, 왜냐하면 이걸 보고 본능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능에 따르면, 본능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 본능에 따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피한다는 이야기를 글쓰기에 대해 할 수는 없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는 것 역시 본능과는 관계가 없을 테니까. 혹은 본능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것이던가.
여기서 확실한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독이라는 것이다. 점점 사람이 나긋나긋해지다가 급기야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들여다본다는 전제하에 심리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느낌은 분석보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나쁜 느낌이 들면 그건 뭔가 좋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죄책감은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지만('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일 테니까) 죄책감 이외의 '생기가 사라지는' 느낌 같은 것은 이유를 이성적으로 알지 않은 한은 바로 인정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은 믿어야 한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알코올 등의 해독을 위해 간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숙취의 증상이 탈수증의 증상과 거의 같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리적으로는 사람의 몸은 물이 대부분이고 그만큼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물리적이지 않은 부분을 보더라도, 대표적으로 정신적인 면을 보더라도 사람은 물병 같은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의 머릿속이 투명한 물병과 같다고 한다면, 우리가 마음을 빼앗긴 아이디어는 새빨간 잉크라고 할 수 있다. 그 잉크 색이 물병 전체로 퍼져서 물병이 빨간색으로 보일 지경이 되면 우리는 그 아이디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더 강한 자극을 들이붓는 것이다. 노란색이었다면 새빨간 색을, 빨간색이었다면 시꺼먼 색을. 그렇게 해서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은 마치 경제위기 때마다 인위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낸다는 경제 음모론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그렇게 주의를 돌리는 것은 어쨌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까 색으로 비유를 했는데, 실제로 검은색으로 물들고 나면 더 이상 다른 색으로는 변화를 줄 수가 없다. 그러면 이제는 나머지 한 가지 방법을 써야 한다. 바로 새로운 물을 집어넣으면서 넘치는 것은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비유를 사용하면 보통은 명상을 떠올릴 것이다. 맑은 물을 계속 넣으면서 검은 먹물을 버리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맑은 물이 되겠지, 하는 것이다. 그것도 맞다. 그렇지만 그렇게 넣는 물이 반드시 투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병에 먹물이 들어 있는데 이 물을 검은색이어서 다른 색으로 바꾸기 힘들다고 하면, 나중에 투명한 물을 넣어서 투명하게 만들기 쉬운 그런 색으로 넣어도 된다. 노란색 잉크가 섞인 물을 계속해서 부으면 되는 것이다. 완전한 노란색 잉크를 들이붓는 수준이 아니라면 나중에 투명한 물을 넣으면 먹물일 때보다 더 빨리 투명한 물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 노란색 물을 부을 때의 주의점은 한 가지뿐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농도가 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농도가 진하지 않다는 것은 그다지 자극이 세지 않다는 뜻이다. 자극이 세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자극이 센 무언가를 밀어내려면 그것은 결국 양이 많아야 한다. 옅은 농도로 물에 섞여 있더라도 그렇게 혼합된 양 자체가 절대적으로 많으면 먹물을 밀어내고 투명한 노란색 물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린다면 백일이나 걸릴 일이 들이부으면 반나절이면 끝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희석된 잉크가 대용량으로 준비되어 있는 이것이 바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강한 어떤 자극에 빠져 있었더라도 얼마든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뼈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습관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우리의 물통은 수시로 색깔이 바뀔 것이다. 반투명한 상태로. 아니 불투명한 상태로.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점점 스스로에게 지쳐가게 된다.
나는 글을 쓰는 것과 운동, 이 두 가지를 습관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보니 어느 정도만 맞는 것 같다. 연휴 전에 어떤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스토리를 다듬는 중이다. 별로 긴 글이 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한 번 쓰면 끝맺음까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아예 쓰지 않을 은 아닌데 계속 책을 읽기만 하고 키보드 앞에는 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명절 연휴를 보내는 동안 리듬이 깨졌다고 할 수도 있다. 책도 한 다섯 권은 읽고 글도 하루에 한 편은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둘 다 실패했으니까. 그렇지만 단순히 리듬이 깨졌다기에는 내가 나태했던 것도 맞고, 다르게 바라보면 일부러 글쓰기를 피한 것도 맞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또렷하게 알 수 없지만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었을까?
다시 습관을 되찾았지만 조금 씁쓸하다. 회사에서 돈을 벌어와서 그 여유를 가지고 글을 쓰는 건데, 습관조차 그 생활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상상 속에서는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쓰는 삶을 꿈꾼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글도 쓰지 않을 거라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게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닌가. 일을 하지 않으면 멈추는 일상이라니.
가끔 작가들과 인터뷰한 글을 읽다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일부러라도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이 글을 쓰는 것이 필수인 '작가'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글을 계속 쓰는 것은 윤활유를 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을 보면 바닷물을 퍼올리는 모터를 냉각하기 위해 그 바닷물을 일부 빼돌려서 모터 안으로 다시 지나가게 할 때도 있는데, 내가 글을 쓸 때도 가시적으로는 글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글이 나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의 일부가 다시 내가 글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게 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 맞는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 글을 매일 써야 한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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