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한다는 것, 무언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쏟아낸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아온 것들 때문일 것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중얼거리면서 푸는 사람들(길을 지나다니다가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전혀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서로 하소연하고 편들어주면서 하는 대화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사람들 등.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입으로 내뱉는 것은 점차 생각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개신교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기도문을 작성하고 읽기만으로 기도가 된다는 '읽는 기도'라는 책도 나와서 사서 읽어 보았는데,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톨릭기도서'라는 것을 보면 개신교 친구들이 놀라고는 했다. 대부분
"기도문을 정해줘?"
가 놀람의 이유였지만, 사실 그 읽는 기도를 해 본 사람들, 혹은 기도문을 이용해서 정기적으로 기도를 해 본 사람은 그게 놀랍다기보다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기도할 때도 기도문을 작성하는 것이 그냥 즉석에서 말로 해서 사라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경을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도 한편 더 이해가 간다. 인간은 모두 똑같으니까.
이야기가 샜는데, 그저 입 밖으로 뭔가를 내뱉는 행위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혼자 글을 쓰는 방식으로 해소를 하는데, 그러다 보니 글들 역시 남에게 읽으라고 쓰는 것인지 단지 내가 다시 읽기 위해 정리해 두는 것인지 알기 힘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나도 어떻게 남에게 더 즐겁게 읽히도록 방향을 바꿀지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지만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도 그건 읽고 그렇게 느낀 사람들에게 고맙게 느낄 일이지 내 글에 무슨 특징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내 내면적으로는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 글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주변에서 말이 없는 사람에게 가끔 글을 써 보라고 권하곤 하다가 지금은 말았는데, 그때 글을 써 보라고 권하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말이 없으면 글로라도 쏟아 내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면 그중에는 생소한 생각도 있고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생각도 있다. 그 익숙한 생각을 내가 전에 표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머릿속에서 생각은 쳇바퀴 돌듯 계속 반복하기 마련이다. 생각이 발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의 생각이 어디까지 왔는지 스스로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3.14, 즉 파이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할 때, 어쩌다가 원주율에서 지름을 나누어서 3이 나오는 것까지 직접 해 보았다고 하면, 내가 그렇게 해서 직접 산출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일깨워야 거기서부터 생각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늘 타이어를 보고 파이를 구해볼까, 아 맞다 한 적이 있지, 이런 식으로 생각이 시간을 잡아먹는 조그마한 괴물이 되도록 눠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혹시 궁금해할 수 있어서 적자면, 글을 써 보라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그렇게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느냐는 질문이 100%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은 대부분 돈을 벌 수 없다. 나는 정신을 뾰족하게 세우지 않고도 돈을 벌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나 어디를 보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예를 종종 드는데, 그러면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그냥 자기도 하면 된다. 글을 쓴다는 말만 하면 그걸로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대한 소리만 해대서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글을 신나게 다 쓰고 다시 읽으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든 앞뒤를 짜 맞추어야 한다. 내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글이 어렵거나 어려운 주제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쓰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한껏 쏟아낸 그 자체에 만족을 하고는 했기 때문에 한 2주 지나서 읽어보면 앞뒤가 연결되지 않거나 심지어 문장 자체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남들도 읽는 공간에 글을 올리는지라 두세 번은 읽고 나서 맞춤법 검사를 돌리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지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느낀 것이, 방금 한 생각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읽으면 재미있다는 신기한 사실이었다. 재미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지나서 읽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 같은 생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글을 읽었으니 입맛에 맞을 수밖에. 그러니 전혀 다른 상태에 있는 남이 읽으면 재미없는 글일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즉석에서 다시 읽어보아야 비문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을 교정할 수 있다. 글 쓰고 다듬는 일은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서 글을 읽기 힘들면 읽지 않게 되는데, 그러면 그냥 '저장한 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로 방치되는 것이다. 재미라도 있어서 일단 읽을 수 있어야 교정이 되고 앞뒤를 연결하는 그런 작업이 가능하다.
글은 문장들이 물이 흐르듯 흘러가기만 하면 나는 만족한다. 논문도 아니고 정보를 주려는 글도 아니다. 내가 쓰는 글 중에도 그런 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정보를 주는 글들 또한 물이 흐르듯 연결이 되어야 읽을 맛이 난다는 점에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글을 쓴 나조차 읽을 맛이 나지 않는 글을 다른 사람에게 읽으라고 올릴 만한 배짱은 없다.
그러니 글을 쓰고 나서 올리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은 글을 쓴 지 며칠이 지나서 교정하는 일이다. 남의 글을 교정하는 출판사 직원들은 그런 점에서 정말 돈을 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글도 며칠 지나면 읽기 싫은데 남의 글을 수없이 읽어야 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졌다니. 게다가 교정을 해야 한다는 말은 중간에 턱턱 걸리는 글을 읽으면서 물길 막는 곳을 자신이 직접 뚫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맞춤법이든 문장의 흐름이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내 글이라 억지로라도 결국 교정을 해서 올리곤 한다. 지금은 저장되어 방치된 글이 없다. 아직 연필로 개요만 적어 놓고 쓰지 않은 글은 있지만.
모든 것에는 근육이 있다고 한다. 생각도 같은 생각을 계속하면 그 방향으로 단련이 된다고 한다. 음모론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점점 더 많이 빠지는 것도 그렇고 구원론 같은 것도 빠지는 사람들은 교회를 옮기거나 심지어 성당에 가서도 계속해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 자체가 굳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에서도 며칠 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면 근육이 어쩌고 하면서 알림이 온다. 회사에서 또는 집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기간이 지나는 동안에는 글을 쓰지 않게 된다. 뭔가를 쏟아내야 하는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말을 하느라 혼자서 조용히 글을 쓸 주제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할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연필을 들고 글감노트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하나씩 골라서 다시 키보드를 꺼내기도 한다. 지금 다시 그런 시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