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 도구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연필이든 만년필이든 키보드든 가리지 않고 뭔가를 손에 쥐고 글씨를 만들어 내고 평면에 그린 그림 같은 글자들이 모여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지고는 한다. 그릇은 그 안에 뭔가를 보관하는 용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내용물이 중력의 힘으로 인해 밖으로 흘러내리거나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가장자리를 막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햇빛으로부터, 혹은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뚜껑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물리적인 장벽의 일종이다. 그러나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라는 것은 평면 위에 마치 무협지에서 바닥에 결계를 치기 위해 뭔가를 그리는 것처럼 사방이 뚫리고 막힌, 각각으로 보면 소리 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여러 가지 그림을 여러 줄로 겹쳐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의미는 그 글자들의 모임에 온전히 붙어 있으며 종이를 뒤집거나 위아래를 반대로 해서 흔들거나 하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방법으로는 그 의미를 그릇 밖으로 쏟아낼 수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무리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 덩어리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짐작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의미가 뭔지, 의미를 정말 가지고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는 대상에 불과한 기호가 된다. 지구상에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 글은 의미가 없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기기의 화면에 표시되는 글은 여러모로 새로운 기능을 가진다. 인터넷상의 알 수 없는 위치의 반도체칩 위에 암호처럼 전자의 배열로 기록된 데이터를 다시 인터넷 통신을 통해 끌고 와서 내 눈앞에 켜 놓은 화면 위에 글자로 변환해 일정한 배열로 다시 배치를 하는데 전자의 배치와 내 화면의 글자들 사이에는 규칙은 있지만 엄밀히 말해 전자의 배열과 글자가 완벽하게 1:1로 매치된다고 할 수는 없다. 똑같은 글자가 수시로 다른 메모리에 배열이 되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수정이 되고, 화면에서만 해도 스크롤하는 순간 위아래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소를 다시 치고 들어가면 어제 보았던 글을 그대로 다시 읽을 수 있고 비석에 새겨진 글자보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와는 일말의 연관도 없는 별도의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키보드를 좋아한다. 글을 읽는 것만 좋아했다면 모니터를 좋아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어딘가에 저장될 글을 쓰고 그 글은 그 어딘가에 알아서 저장이 되고, 내가 읽고 싶을 때 그 어딘가에서 불러와서 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신비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고 내 손에 있는 기기(예를 들어 휴대폰)에 저장한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메모리에서 어느 위치에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데다가 그렇게 저장되는 것이 반드시 글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신비를 느끼기 위해서는 글일 필요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한 자리 숫자 하나든 내가 입력한 것이 어딘가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고 내가 불러내면 다시 떠오른다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그런 일은 너무 자연스럽고 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흔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어떤 도시에 거지가 흔하다고 해도 그건 정책 탓이든 사람들의 인식 탓이든 인과 관계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한 일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흔한 예로는 계산기의 메모리 기능이 있다. 몇 자리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 같을 수 있지만 그 메모리는 내가 저장하는 시점에서 저장 장소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건 신기한 일이 맞다.
그래서 내가 가장 가지고 싶어 하던 형태의 입력과 저장과 화면표시장치의 조합은 미니 LCD 모니터와 라즈베리 파이와 블루투스 키보드였다. 반드시 글을 쓸 필요도 없으니 프로그래밍이나 하려고 했었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고 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 반절 정도만 이루었지만,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면 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집어넣은 글자들이 코드를 이루고, 그 코드 역시 내가 파일을 열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코드를 통해 다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게 되고, 거기서부터는 이미 내가 알파벳을 입력하던 순간과는 전혀 다른 동작이 벌어진다. 내가 'printf'와 그 뒤에 'Hello World!'를 치는 것과 나중에 내가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화면에 내가 지금 입력하고 있지 않은 뭔가가, 과거 어느 시점에 내가 입력을 해 놓아서, 엄밀히 말해 '코드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문장이 표시되는 것은 프로그래밍의 규칙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쉽기는 하지만 그런 코딩 소프트웨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소름이 돋았던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똑같이 키보드를 사용해 입력을 하는 일이지만 키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지, 똑같이 연필이나 만년필로 종이에 글씨를 쓴다면 일어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도구가 글을 쓰는 것 말고도 수만 가지를 할 수 있는 형태로 확장된 지점이 컴퓨터였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키보드를 가지고 뭔가 입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시대의 변화를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키보드라는 것이 존재했던 세대가 절대다수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