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를 절묘하게 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문학작품이든 실물로 제작한 상품이든 관계는 없다. 어차피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조금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속이려는 의도가 보이는 얕은 잔머리를 보면 화가 치솟고는 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인데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 머리를 쓰는 것과 자기에게만 좋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하는, 그야말로 가식을 위해 머리를 쓰는 것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자는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맨 위의 시간 표시 바를 터치하면 어떤 앱에서든 맨 위로 가는 기능을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것이고 후자는 명절이 되면 쿠팡으로 한복을 구입하거나 수능 직전에 도시락을 '구입'해서 한 번 사용하고 바로 반품처리하는 것을 요령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알리익스프레스를 보다가 전자의 경우를 보았다. 컴퓨터나 태블릿, 전자책의 케이스이면서 케이스가 아닌 원래 제품인 것처럼 사진이나 문구를 조작한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제품 자체가 기발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옛날에 내가 사용하는 기계식 키보드들이 숫자키가 따로 없어서 아내가 숫자 키보드만 별도로 구입했던 적이 있다. 나는 숫자키가 없는 콤팩트한 키보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숫자키가 있는 키보드는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데 아내는 노트북에도 숫자키가 있는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내가 별도로 가지고 있는 키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들어 있어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숫자자판이 따로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아내의 노트북에 이미 숫자키가 따로 있으니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오랫동안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때가 아니면 거의 쓸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발견한 제품은 마치 이런 불편함을 느끼고 개발한 듯한 것이었다.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숫자 키보드라는 것은 똑같은데 액정이 달려 있어서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하지 않을 때는 단독으로 계산기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언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올해 2024년도 초에 블루투스 숫자 자판을 구입할 때는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때 발견했어도 기발하다며 기분이 좋았을 것이 틀림없으니 보았는데 모르고 지나갔을 리는 없다.
그러고 보니 일반 키보드도 어차피 항상 USB로 전원을 공급받는데 모든 키보드의 숫자 자판 위에 액정을 달아서 계산기로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야 조금 올라가겠지만 그 정도는 블루투스 기능을 위한 회로보다는 저렴하지 않을까? 아무리 컴퓨터의 운영체제에서 제공하는 기본 계산기가 있다고 해도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훨씬 편한 일일 텐데 말이다. 블루투스 키보드의 경우에는 굳이 컴퓨터를 켤 필요도 없을 것이고.
이런 방향으로 기분이 좋을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도 하나의 재미 같은 것이어서 몇 번만 반복되고 나면 바로 시들해지거나 지루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나 즐거운 법이지 내가 눈을 굴리며 찾아다니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신기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들이 되어 버리고 만다. 뭔가 새로운 듯하면서도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문득 글을 쓰다가 느낀 것이, 알리익스프레스든 쿠팡이든 네이버 쇼핑이든 시간이 나면 신기한 것이 없는지 한 번씩 구경하듯 둘러보고는 하는데 그것도 재미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재미가 없다. 이제 이러다가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면 물건을 사다 나르게 되는 것이겠지.
문득,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생각보다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게 왜 기발하다는 거지?'였다. 왜냐하면 나는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구조상 그 지우개는 종이에 조금만 세게 문지르면 지우개가 찢어지든 종이가 찢어지든 아무튼 찢어져 버렸다. 지우개가 있기 때문에 더 비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지우개가 찢어져 버리고 나면 연필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한두 자루를 그렇게 만들고 나서는 그 지우개는 사용하지 않고 새것 상태로 그냥 들고 다녔다. 그래서 결국 다른 지우개를 함께 가지고 다녔는데 그 쓰지도 못하는 지우개를 그것도 교과서에서 위대한 발명품인 것처럼 소개를 하는 말을 듣자니 드는 생각이라고는 '어른들은 다 볼펜이나 샤프를 쓰니 연필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는구나.' 정도밖에 없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 같은 생각이었다. 남들에게는 좋아 보여도 나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단적으로 말하자면 보기에는 좋지만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마트에서도 그런 시험적인 제품을 간간이 보곤 했다. 지금도 다이소에 가끔 나타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일회성이다. 제품을 보고 나면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 구입을 해도 마진이 날 만큼 숫자로는 규모가 커서 생산해 낼 수 있는 나라가 미국과 중국뿐이라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걸 만들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보았던 계산기 겸용 숫자 키보드도 쿠팡에서 검색해도 모두 직구로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내 생산을 하더라도 극소수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말을 해도 결국은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기발한 제품을 소개하는 SNS나 유튜브 채널들도 있지만 보면서 보았다는 사실 자체로 즐겁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정말 새발의 피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내가 느끼지 못한 곳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각도에서 그런 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즐거움은 그 자체로 만족감이 제법 크다. 물건을 사모으지 않더라도 그런 재미만 마음껏 느낄 수 있으면 삶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할 테니, 그냥 꿈이라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