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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Nov 23. 2024

미루기

사실 종로 투썸플레이스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글을 썼던 시간에 대한 글은 하루가 넘게 브런치 저장 글에 처박혀 있었다. 다시 읽으면서 문장도 고치고 내용이 끊기는 곳은 다시 연결하는 작업들이 그렇게 하기 싫을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이 없으면 맞춤법 교정을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맞춤법 교정도 하지 않았고, 맞춤법도 보지 않고 발행하는 수준의 성의로 글을 올릴 거면 블로그였어도 혼자만 보는 비공개 글로 올렸어야 했을 정도이니 결국 저장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왜 싫었을까? 내가 쓴 글인데 그걸 다시 읽는 것이 왜 싫었을까? 다시 종로의 아침으로 돌아가 그날 기분 좋게 그 시간을 돌아보면, 출근하는 날이었다면 그렇게 사치스러울 수가 없었을 황금 같은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는 게 왜?
결국 다시 읽으면서 교정 작업을 다 끝내고 발행까지 하고 난 지금 돌아보자면, 그때 너무, 그러니까 커피 향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던 카페공간(오픈하고 나서 해당 층에는 내가 처음 들어간 것이니)과 그곳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본 모습, 그러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지만 그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에서 바쁨이 느껴지는 길거리 등이 기억 속에서 얽히면서 기분에 취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많을 것 같다고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단 정말 기분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뒷전이었어서인지, 그냥 무미건조한 글일 뿐이었다.
사실 반드시 글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도 한 번 미루고 나면 계속해서 눈덩이가 불어나듯 아주 지속적으로 미루게 되는 일은 수두룩하다. 집에는 아직 조립하지 않은 키티 건담 프라모델도 하나 있다. 귀여운 키티가 하나, 그리고 키티만 한 조그만 건담이 하나인데 키티만 조립하고 건담 모형은 손도 대지 않았다. 프라모델이라고 하면 당연히 건담이 우선인데도 말이다. 얼마 전에는 프라모델에서 부품을 분리하고 다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니퍼도 구입했다. 그 니퍼를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니퍼 때문에 시간도 훨씬 덜 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박스를 다시 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글을 다시 읽으며 다듬지 않은 것도 한 번 바빠서 시간이 넘어갔을 뿐인데 내가 너무 미룬다는 것에 민감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룬다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는 일은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모호해서 그렇다면 기준을 다시 세우면 된다. 그렇지만 미루었다는 사실에집중하게 되면 구체적인 계획은 생략한 채 '언젠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만 남게 된다.
나는 책을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는 편이다. 이 책을 읽다가 여기에 두고 다른 책을 읽다가 또 책갈피를 꽂아 두고는 한다. 그렇지만 서너 권을 그렇게 해 두면 이주 정도 걸려서 그 책들을 모두 읽는다. 그 책들을 펴고 이어진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것은 모닥불을 피워 두고 잠깐 다른 방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불멍을 이어서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각 책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책을 열고 글자를 읽는 것은 그 세계에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책은 그렇게 읽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그렇게 덮어놓은 책을 보면서 저렇게 계속 놔두다가는 책갈피 있는 곳을 펼쳤을 때 그 전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처음부터 읽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책갈피들을 모두 빼버려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의무감을 갖는 순간, 그 책들 중에 한 권을 필두로 해서 강제 책 읽기 랠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게 되는데, 그냥 펴서 읽고, 또 그냥 덮어 두고, 다시 그냥 다른 책을 읽는 그런 '그냥'의 흐름이 깨져 버리기 때문에 어떤 책에서 다시 읽기 시작해야 하는지만 생각하다가 미루고 또 미루어서 결국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펼쳐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눈 딱 감고 아무 책으로나 시작한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남은 분량을 읽는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내용이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올 턱이 없다.
미루는 것을 너무 나쁘게 생각해서도 안 되는데, 그것은 미루는 것이 너무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는 것이 들기 시작하면 그 사실 자체에 집착하기 쉽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만 곳부터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전에 걷던 오솔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오솔길 길가에 있는 것과 그것들을 바라보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할 때의 기쁨에 대한 기대보다 그 오솔길에 들어서지 않은 기간에 대한 초조함과 죄책감이 더 크다면 오솔길에 들어서서도 결국은 목적지를 향해 전력질주만 하고 끝내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은 똑같겠지만 전혀 즐겁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인생이긴 하다.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다. 하지만 기쁨은 삶의 목적이 아닌가. 모든 종교의 목표라는 황홀감도 결국 기쁨일 것이고 음악을 듣다가 절묘한 화음에 귀가 즐거운 것도 그런 것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인한 기쁨이다. 정신은 내가 주는 것만 넙죽넙죽 받아먹는데, 이왕이면 기쁨을 많이 먹이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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