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Dec 21. 2024

지식은 체계화가 필요하다

인류의 지식은 끊임없이 누적되어 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커다란 재앙이 닥치면 그 누적된 지식은, 지혜는, 도서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재앙을 수없이 반복해서 겪어왔다. 그 도서관들은, 지식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의 일이니 쉬운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많은 책들뿐 아니라 건물들도 그런 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인류사의 재앙은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폼페이의 화산폭발도 있다. 그런 자연재해는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살릴 수 있는 지식도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지식이 사라질 수 있는, 인류의 존재라는 모래성 같은 기반 위에 지어졌지만 인류의 존재가 있으면서도 그 모래성만 무너지는 경우는, 무너지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서갱유에서 책들이 살아남은 것은 아마도 태운 책들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양들을 태웠든 숨겨서 보존할 수 있는 규모였던 것이다. 그것들을 몰래 보존한 일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지식이었을 거라는 뜻이다. 그 말은 지식이 적다면, 그리고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책이나 메모리 등 매체가 적을수록 보존하고 보관하는 것도 쉬우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존이라는 것은 다시 꺼내 사용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다시 꺼내서 유용하게 사용할 만한 것만 보관하는 것이 제1원칙이다. 보존을 했지만 방대한 도서관이 통째로 있어서 아무도 거기서 뭔가를 공부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 그 도서관은 그 자리에 있는 산과 마찬가지로 공간만 차지하고 있게 될 것이 틀림없다.
모든 지식은 간결하게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을 할 사람들은 당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당면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힘겹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인류의 지혜를 보존하는 데에는 그런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업무를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회사의 정규적인 매뉴얼과 별도로 OJT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지혜 역시 그 분야를 모르는 사람이 그 분야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식은 요약하고 중복되는 것을 걷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는 전자 분야의 기록들이 여섯 개 라면 박스에 나누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 자료부터 최신 자료까지 가리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것을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록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진심이었던지라 2년 정도 틈틈이 지켜보던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드디어 한여름 어느 날, 방학이라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 때, 한 박스 한 박스 열어서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단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박스인 것처럼, 테이프조차 힘없이 떨어져 나갔고, 안에서 각종 파일들과 신문들, 신문 스크랩 등이 바닥에 내려놓을 때마다 먼지를 풀풀 풍겼다. 자료들은 이미 시간이 매우 오래 지나서 신기한 실험 주제 같은 것들이 이미 제품화가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심지어 16비트 컴퓨터에 대한 기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자료들을 계속해서 분류하면서 놔두면 후배들이 볼 만한 것, 이미 지났고 별로 기술적으로는 필요 없지만 선배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이렇게 두 가지만 놔두고 모두 버리기로 했다. 여섯 박스였는데 그렇게 분류하고 나니 한 박스만 남았다. 그때 어떤 후배가 '어차피 보지도 않을 건데 굳이 분류할 필요 있을까요? 그냥 버려도 될 것 같은데.'라고 하기는 했는데, 내 생각은 어차피 버릴 거면 진작 버리지 왜 놔뒀냐는 것이었다.
그 분류를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일단 일부러 쌓아둔 것이었기는 하지만 그만큼 실제 산업 분양에서 어떤 관점에서 전자공학을 바라보는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내가 모아둔 자료만 본 후배들도 아마 알 수 있었을 테지만 과연 그 박스를 다시 꺼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이때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몸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은 쌓아놓아도 정리를 하지 않으면 쓸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도서관도 역할에 따라 자료를 다르게 해야 한다. 현재 사람들이 책을 접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도서관은 되도록 최신의 모든 책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자료를 보존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인 도서관에서는 자료를 선별해서 가지고 있는 도서만으로도 다시 지식을 세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인터넷 자료를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시 인류의 지혜의 끈을 엮기 위해서는 바닥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서로서로 꼬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지혜를 전하는 것에는 관심이 있을 수가 없다. 스스로 배워온 경험에 비추어 누구나 노력을 해야 한다고말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달려든다면 그냥 모양이 예쁜 책을 고르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아는데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아주 곤란한 상황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