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집에서 차로 사십 분 거리에 있다. 그렇지만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즐비한 시내에서 벗어난 산골에 처박아 두었기에 꼭 사십 분 이내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보통은 열 시에 수업이 시작하도록 수강신청을 해 놓았기에 출근 시간대를 벗어나 버스로도 얼마든지 사십 분이면 도착하지만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사실 수많은 이유로 수없이 길이 막히고는 한다.
시내에서 십이 차선 도로를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왼쪽으로 상벽과학고등학교가 보인다. 학교가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아니다. 거기에 갈 만한 애들은 천재라느니 시의회에서 지원금을 줄이느니 늘이느니 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그 학교가 큰 길가에서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남 일이니까. 학교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 앞에 하천이 있는데 하천 위로 대로 위로 보이는 높이까지 육교가 있고 그 육교 한가운데 절반이나 차지하도록 구체를 세워놓고는 그 구체 한가운데에 마치 유니버설픽처스처럼 상벽과학고등학교라고 양각으로 표시를 하고 그걸 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하게 해서 잘 보이게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누군가
'상벽과학고등학교? 왜 저게 저기 있지? 학교가 근처에 있나?'
하면서 둘러보다 보면 근처에 하얀색의, 보통 사무실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 위쪽에 똑같이 금색으로 학교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단, 건물에 붙어 있는 글씨가 구체에 붙어 있는 것보다 작아서 조금 더 세련돼 보인다. 그걸 보면서 과학고등학교라서 인문학이나 미학 쪽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렇게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국가적인 기능을 제외하고 내게 개인적으로 상벽과학고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학교까지 가는 길의 정확히 중간에 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중간이다. 학교까지 24킬로미터이고 상벽과학고등학교가 12킬로 미터지점이다. 게다가 밀리는 도로 한가운데(내가 이용하는 정체구간에서도 정확히 절반이다)에 있게 때문에 시간상으로도 정확히 중간이다. 집에서 출발한 지 40분이 되어 간신히 상벽과학고등학교까지 왔다면 학교까지도 40분이 더 걸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십이 차선에서 벗어나 학교 이름이 있는 표지판을 보면서 출구로 빠져나오면 옆으로 상벽과학고등학교 옆, 육교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이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곧 하천은 다시 꺾여 들어가고 사 차선 도로만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조금만 학교 쪽으로 가더라도 하천 옆으로 내려와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오늘 꿈속에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보통은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지만 오늘은 중간에 도서관을 들러야 해서 어쩔 수없이 차를 가지고 왔다. 차는 액센트이다. 오래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전기차로 새로 나오면서 껍데기만 그렇게 씌웠을 뿐이다. RF로 차량정보를 신호등 신호제어기 수준의 기기에서도 수집을 하고 이상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하는 시스템이 되면서 차량의 개조도 조금은 자유로워졌기 때분이다. 그러나 이왕 그렇게 할 거면 조금 큰 차, 예를 들어 적어도 소나타 정도까지는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학교 도서관은 학교에는 전공서적만 잔뜩 있고 조금 떨어진, 예전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한 도서관에 일반 서적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책들이 도둑맞을 위험이 더 많으니 학교 안 도서관에 넣고 전공서적은 아무도 훔쳐가지 않을 테니 학교 밖 도서관에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학생들 생각이고, 그 초등학교 운동장이 넓다는 이유로 재단에서 그곳에 교수 사택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교수 가족들에 대한 복지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 도서관에 가려면 반드시 차가 있어야 했다. 마을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시외버스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는 것도 번거롭거니와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다 보니 시간이 어중간하게 걸리면 걸어서 나오는 편이 시외버스를 타기에 더 나았기 때문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나오면 바로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다. 걸어서 이십 분을 걸어 나와야 하지만 마을버스가 지나가자마자 나올 경우 사십 분은 일찍 시외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시외버스는 시내구간에서도 타고 내릴 수 있기 때문에 편하지만 사실 그 정류장은 집에 가는 시내버스도 두 대나 배치되어 있어서 마을버스 때문에 그것들을 사십 분 동안 그냥 보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도서관에서 그 정류장에 가는 길이 산 아래로 지나가기 때문에 터널로 통과해서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거나 운전해서 가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걸어가기에는 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에다 조명도 없는 깜깜한 굴이어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가야 사고가 나지 않는 조건이 되는 것 같은데, 사실 걸어가려면 바닥을 비추어야 하기도 했다. 내가 운전하고 갈 때도 때때로 걷던 아이들끼리 서로 밀치는 바람에 실제로 없는 차선이지만 아무튼 중앙을 넘어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걷는 것보다는 조심해서 운전하는 일이 쉽기 때문에 오늘도 차를 가지고 갔다.
오늘은 아홉 시 1교시부터 수업이 있기 때문에 일곱 시에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탔다면 조금 여유가 있었을 텐데(버스는 아무리 밀려도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한다. 버스기사가 버스와 한 몸이 되어 급가속이나 급정거를 하지 않으면서도 난폭운전을 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느낄 수 있는 거라곤 의외로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사실뿐이다.) 도서관에 가야 하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느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여덟 시가 되기 전에 도착해서 다음 달에 있을 중간고사에 대비해서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에 나올 것이 확실한 것들은 언제 쪽지시험을 볼지도 모를 일이니까.
수업은 세 시에 끝났다. 중간중간 공강에는 빈 강의실에서 공부를 했다. 팔 층짜리 건물이지만 빈 강의실은 삼 층에만 있다. 나머지 층은 수업이 끝나면 교수가 문을 잠그고 나간다. 관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이리긴 한데 그런 일을 교수가 직접 한다는 사실은 늘 의외다. 빈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담당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신분증 검사를 한다. 아무리 책을 쌓아놓고 공부를 하고 있어도 예외는 아니다. 멀쩡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가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말을 거는 신천지도 있고, 공부를 방해하기로는 기독교 동아리도, 불교 동아리도, 심지어 무속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아니라면 즉시 쫓겨날 것이고 학생이 그런다고 해도 그렇게 직원이 돌아다닐 때 이야기를 해 주면 곧 쫓아낼 수 있다. 이번에 공부하는 내용은 뭔가 계단처럼 하나가 풀리면 그 답으로 나온 식으로 그다음 문제를 풀고 다시 그 답으로 나온 식으로 그다음 문제를 푸는 릴레이어서 재미가 있다. 이해만 하면 외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운이 나쁘면 식 전체를 외워야 할 필요도 있다. 일부는 통분을 하고 일부는 놔두는 식으로 유도해야 하는 식들은 정리하는 과정 전체를 외워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학년이 바뀌면 그냥 결과만 머리에 남는 것이다.
오늘은 직원이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평소보다 주차된 차가 많아서란다. 솔직히 그렇게 오는 애들이 차 번호를 주차등록시스템에 저장하고 싶을까 싶기는 하다. 이제까지 그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아, 어학연수 가는 학생들에게 여행자 보험 들라고 오는 보험사 직원들은 모두 고급차를 타고 왔었지만.
이윽고 오후 세 시가 되었다. 교수가 문을 잠그려고 앞에 서 있고 나도 급히 가방 안을 정리했다. 어차피 차에 탈 것이기는 하지만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니까, 사람들이 한바탕 내려가고 나서 엘리베이터로 가면 조금은 여유 있게 탈 수 있을 테니까 조금은 여유를 부렸다. 교수도 그걸 아는지 표정은 느긋했다. 다음 엘리베이터도 놓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리포트 만 점이던데?"
"네?"
"고생했어. 이렇게만 하면 에이 플러스받겠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제 수업이 없는 건가?"
"네, 분교 도서관 가려고요. 반납하고 빌릴 책이 있어서요."
"그래, 거기는 조금이라도 밝을 때 가야지, 너무 음침하더라. 특히 거기 터널은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끼쳐서 나는 사택도 안 받았어."
"그러니까요. 다른 길을 뚫어주거나 아니면 터널에 조명이라도 정상화해 주면 좋겠습니다."
"시청에서는 우리 학교 시설밖에 없으니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모양이더라고. 초등학교 운영할 때까지는 정상적으로 동작했었으니까 램프만 갈면 될 거라고."
"그게 그렇게 되나요?"
"아니지, 재단도 학교로 먹고사는데 학생들한테 돈 걷어서 시에다 생색낼 일이 뭐가 있어? 다음 주에 총장하고 국회의원이 만나니까 뭔가 결론이 나겠지."
"잘됐네요. 그 안으로 마을버스 말고 시내버스도 다니거나 아니면 마을버스라도 자주 다니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아, 준비 다 됐어? 가자."
"네."
엘리베이터에 타서 나는 1층으로, 교수는 5층 교수실로 갔다. 차에서 시동을 거는데 차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3도였다. 어젯밤만 해도 눈이 펑펑 내려서 쌓였는데 3도라니. 도로가 언 곳은 없었지만 긴장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이 켜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집으로 갈까요?"
깜빡거리는 마이크 표시가 사라지기 전에
"응"
하고 대답했다.
"게임모드로 실행할까요?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일반모드로 실행할게요."
"실행해."
"알겠습니다."
일반모드는 동그라미로 현재 내 위치만 표시하는 방식이다. 근처의 건물이나 길은 지도 데이터에 저장된 것만 표시를 하는 전통 방식이다. 게임 모드는 위성에서 받은 사진과 자동차가 수집한 정보를 조합해서 실시간으로 표시를 한다. 이 경우에는 위에서 본 건물들의 모양과 근처의 자동차들이 모두 표시가 되어 운전하기가 조금 더 쉽다. 단 터널에 들어가면 한 십 초정도는 눈으로만 운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부드럽게 후진을 하다가 뒤에 있는 자동차에 가까워지자 자동으로 부드럽게 정지를 했다. 핸들을 꺾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하천이 옆으로 다가오면 조금만 더 가서 바로 대로로 올라타는 곳에서 올라가지 말고 조금 더 가야 한다는 점만 빼고는 그냥 이차선 도로를 따라가면 되는 쉬운 길이다.
그때,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분명 도로인데 흙바닥이 있다. 이 차선이 온통 흙바닥이다. 물이 흐르고 있고. 하천이 범람했나? 아니, 폭우도 오지 않는데, 게다가 겨울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기묘한 그래픽이 나왔다. 내 앞에서 자동차가 두 대가 겹쳐진 게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앞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커브이다. 속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물 반 흙 반이라 그런지 계속 밀려가는 느낌이다. 근처에 있는 차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그제야 내 앞으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승용차가 한 대 있고 그 위로 미국식 픽업트럭이 얹어져 있는데, 모양으로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던 승용차를 저 픽업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올라타면서 그 속도로 거꾸로 밀고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대편 차선에서는 차가 한 대도 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픽업트럭의 속도 때문에 승용차는 나를 향해 후진하듯 오고 있었다. 내 차는 옆으로 돌기 일보 직전이었고 이미 일 차선에 있던 차는 저 뒤에 서 있다. 일 차선 쪽으로 핸들을 꺾었지만 차는 계속 앞으로만 간다. 앞바퀴로 흙을 미는지 속도는 조금 줄어든 것 같지만 앞에서 픽업트럭이 덮치는 건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나는 허리를 틀어 조수석 쪽으로 숙였다. 픽업트럭의 타이어가 앞유리 위쪽을 터뜨리듯 찢으며 들어왔고 천장이 찢겨 나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여전히 조수석 쪽으로 허리를 틀고 있었다. 다시 똑바로 앉자 허리에서 두두둑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먼저 안전벨트를 풀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두 다리가 똑바로 땅에 딛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내 차를 보았다. 앞으로는 다른 승용차를 받았고, 픽업트럭은 내 차의 천장을 찢다가 말고 그대로 획 돌아서 마치 내 차의 천장을 잡고 올라타 있는 형상이 되어 있었다. 픽업트럭 기사로 보이는 사람도 내차 뒤에 서서 허리에 팔을 올리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차에 들어가서 내비게이션에게 보험사를 부르도록 하고 다시 나왔는데 이미 픽업트럭 기사가 부른 보험사 직원이 도착해 있었다.
"액센트 차주신가요?"
"네."
"보험사 부르셨어요?"
"네. 금방 오겠죠?"
"모르겠어요. 저 앞에서 경찰에서 통제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앞까지만 오면 경찰에게 말하고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아예 대로에서 못 내려왔다면 모르겠네요. 혹시 모르니 보험사와 보험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보험번호를 알려주자 곧 그가 내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그러더니 곧 현장 사진을 찍어 자기네 통신망으로 전송을 했다.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네, 제가 담당자인데요, 지금 상대방 보험사 쪽에서 현장사진을 관련 보험사들과 모두 공유를 해서 저는 반드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완전히 막혀 있거든요.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하니 뚫리는 대로 현장으로 가기는 할 건데요, 혹시 계속 거기 계실 거라면 견인차를 불러드릴게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럼 견인차가 오면 그냥 바로 타고 가도 되는 거죠?"
"네. 견인차도 언제 도착할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요."
"되는 데까지만 하면 되는 거죠.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오시면 저 좀 태워주세요."
"견인차보다 제가 먼저 도착하면 저도 어차피 견인해 가는 것까지는 확인해야 해서 바로 출발할 수 없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문제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오세요."
"예, 감사합니다."
내 차에 갖다박은 승용차 운전자는 한쪽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발도 물에 잠겨 있었다.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물도 그렇고."
"갑자기 따뜻해져서 산에 있던 눈이 한꺼번에 녹아서 폭우 왔을 때처럼 범람한 거래요."
경찰관이 대답했다. 이런 건 조심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책 몇 권 때문에 지금 나왔을 뿐인데. 혹시 엘리베이터를 빨리 탔으면 지금쯤 도서관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빨리 나와서 사고를 당하고 어떤 때는 여유롭게 나와서 사고를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