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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Dec 29. 2024

몬테네그로 페라스트에서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쓰는 글

몬테네그로는 인구가 적고 면적이 좁으며 지하철도 없고 자연이 풍부한 나라이다. 짧게 말하자면 '시골'이다. 싱가포르 같은 특이한 경우 외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대부분의 면적이 시골이기는 하지만. 페라스트라는 관광지는 대략 4~500년 된 건물들이 중심이고 막상 가보면 과일이 저렴하고 날이 매우 좋은 곳이다. 가끔 있는 초대가수 공연이면 우리나라 시장에서 하듯이 지역 어른들이 다 모이고 심지어 저녁에 그런 공연이 열리게 되면 온 마을 사람들 축제가 되어 다들 모여서 인사하며 술을 마시고 아이들도 다 같이 과자와 음료수를 마시면서 공을 던지고 논다. 노래방도 없는 동네여서 기타를 연주하는 초대가수가 오면 아이들이 가수에게 가서 요청을 하고 가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순박하다거나 한 것보다는 좁은 지역의 단점이 뭔가 장점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매일같이 성당 문을 열어주시는 엄격한 표정의 아주머니도 그때는 활짝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슈퍼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자리를 울 때면 대신 계산을 해주던 분들도 그 자리에 다 나와서 뭔가를 하나씩 들고 마시고 있다.
페라스트 한 곳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인구가 늘어나고 주민들 사이에 서로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되면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안 그래도 이런 사람들도 있는 반면 주말에만 문을 여는 가게를 지키던 사람들은 이 야외공연 자리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이런저런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시차도 많이 나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인지 생소한 것이 있기는 해도 하나하나 한국과 비교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6개월이 되면 다르지만. 캐나다에 있었을 때도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캐나다 케이블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를 해 주더라도 한인들은 저런 걸 좋아하겠지, 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지금이야 캐나다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방송을 시청하는 수요가 있을 테니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겠다. 그렇지만 6개월이 지나가니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국 책도 구경하고 한국 드라마도 일부러 틀어놓고 한국어를 마음껏 쓰는 모습 구경하기도 했다.
지금은, 유튜브 한국에서와 똑같이 볼 수 있다. 한국 노래도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마트에서도 틀어주고 있으니 딱히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환경, 다른 시간이라는 점에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바닷물 색깔부터 하늘의 구름까지 글로 쓰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다.

이런 때 제일 먼 메모지나 글감노트에 간단히 적어 놓으면, 그 문장이 씨앗이 되어 내 머릿속에서 싹을 틔다. 그 싹이 돋아나면 조심스럽게 싹이 난 씨앗을 돌려가면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 특징들을 천천히 적어 나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한 문단만 잘 쓰고 나면 더 이상 그 싹을 관찰할  필요가 없다. 그 싹의 나머지는 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자라고 있으니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자기 장애물이 생겼다. 페라스트에는 희한하게도 문구점이 없어서 간단하게 적을 만한 하니도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에 적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휴대폰의 메모는 여유가 없을 때 급히 적는 용도로만 보통 사용하던 것이라서인지 메모 앱을 열자마자 곰곰이 생각해서 가꾼 씨앗은 그대로 불타 사라지고 만다. 잿더미를 보면서 나중에 글을 써 보려고 해 보았자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는, 말 그대로 재일뿐이다.
메모를 포기하고 여유가 있는 만큼 일단 키보드를 꺼내 놓고 머릿속에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기기도 한다. 아니면 막무가내로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지금처럼, 무작정 라키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면 머릿속이 점점 색깔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고 드디어 글이 나오기 시작할 때도 있다.
대형 텔레비전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첼로 콘서트를 틀어 놓아서 묵직하고 즐거운 음악이 흘러넘치고 뱃속은 라키야, 머릿속은 술기운이다. 새벽부터 귀와 눈과 손이 즐거운 글을 쓰는 현장. 글은 솔직하거나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글에 대한 내 지론이다. 솔직한 생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써야 한다. 수다를 떨 때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동의할 만한 당연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동의의 첫 상대는 나 자신이다.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글 속에서 대화가 무르익어간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동의할 만한 내용이 되면 읽을 만한 글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그게 아니면 최소한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동의도 할 수 없고 재미도 없으면 그건 읽을 이유가 없는 글이 아닌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쓴 글조차 의외로 다시 읽고 싶은 글이 있고 아무리 읽어도 써야 해서 썼구나 하는 글이 있는데 남이 읽었을 때 어떤지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재미는 다르다. 최소한 나에게만이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지금 쓰는 글은 최소한 솔직하기라도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부터 술 마시며 음악에 젖어 쓰는 글이라니. 그것도 창문을 열면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시골에서.
조금 전 여섯 시에 숙소 옆 성당에서 울린 삼종 종소리가 울렸다. 여기도 비둘기가 있고 갈매기가 있던데, 갈매기가 비기에게
"어차피 해가 떠야 먹이들이 보이는데 벌써부터 종 치고 시끄러워서 깼다. 이제부터 먹이 나올 때까지 뭐하냐?"
라고 하면 비둘기가
"네 친구들한테나 얘기해. 우리는 먹이 많아. 우리 먹이는 너희처럼 물속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와, 너 깨어 있었네? 대단하다. 아침형 조류구나!"
"근데 너 뭐 하냐? 어두워서 먹이도 없는데 돌아다니면 다른 갈매기들이 뭐라고 안 하냐?"
"응 안 보여서 돌아다녀도 아무도 몰라."
"근데 우리는 비둘기야."
"응 알아."
"잡식이라서 갈매기도 먹어."
"이따가 그럼 물고기 나눠줄까? 잡식이라며?"
"꺼져"
라고 했다.
헛소리 같은데, 실제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잠이 덜 깬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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