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적으로 추가된 <I>의 주의사항
이스탄불 스타벅스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스스로가 사람을 싫어해서 그런 경우와 성격상 사람들 사이에 있기가 힘들어서 그런 경우. 첫 번째 경우는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조금 달라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하지는 않지만 어울릴 때는 그럭저럭 잘 있는 타입과 본의 아니게 옆에 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타입, 이렇게 최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어쩌면 사람이 싫어서 그런 경우도 이런저런 많은 타입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내가 겪어본 경우는 그렇다.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나 역시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은커녕 생각도 하기 싫고 두 번째 경우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여기에 타입이 두 가지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첫 번째 타입이지만 살면서 두 번째 타입도 몇 번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이러한 타입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물론 설명을 할 거다.) 그 이유 역시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지 않는데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한 사람도 있는데 보기와 달리 물지 않으니 이해해 주세요(물기는커녕 가까이 오지도 않습니다.)."
라는 당부를 하려는 것이고 둘째로는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과 공감의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다. 이런 타입들의 사람들은 공감도 조용히 한다.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이 구절이 나와 잘 맞았다던가, 대체로 맞는데 여기는 틀렸다던가 하는 것도 혼자 생각하고 말지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댓글을 달기도 하지만 십중팔구 댓글을 쓰기 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대댓글이 달리지 않을 만한 선에서 조율을 잘 마친 후 저장을 누른다. 이런 경우에는 대댓글에서 신나게 맞장구치며 다른 쪽으로 새로 대화를 시도하면 당황하기 일쑤이다.
안 그런 경우도 있다. 당연히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길을 잃고 헤매다 길을 물어본 5명이 모두 불친절했더라도 그다음 한 명이 친절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도를 아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같은 곳을 계속 맴돌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자연조차 장소에 따라 예외가 있는데 임의로 만든 규칙 속에 가두어 놓은 인간 사회야 말할 것도 없다.
오늘은 스타벅스에 갔다. 이런저런 작은 카페들도 많았고 식당도 떠들썩한 곳이 있고 조용한 곳이 있지만 이곳의 스타벅스는 천장도 높고 널찍한 데다 테이블도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글쓰기 좋아 보였다. 이스탄불은 어디를 가도 야외 테이블은 항상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넘친다.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대부분의 테이블이 비어 있었고 완전히 말라 있어 비를 맞지 않을 것이 확실한 벽 쪽 테이블에만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비가 오더라도 습기는 그리 거슬리지 않았지만 여행을 떠나고 거의 열흘 만에 저기압이 찾아오니 몸에 기운이 제대로 돌지 않는 느낌이었다. 뭔가 찌뿌둥한 느낌. 어제 많이 걸어서라기엔 단순히 다리에 피로가 쌓였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며칠 동안 맑다가 오랜만에 비가 오거나 흐리면 머리도 잘 돌지 않고 커피를 마셔도 뭔가 졸린 듯 아닌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런 것을 타지에서 또 다른 형태로 느낀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스타벅스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층고가 4미터 정도로 매우 높음에도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천장에서 다시 반사되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보면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공간 전체가 웅얼거리는, 마치 목소리의 안개가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틀어 놓은 노래가 은근히 볼륨이 높아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배경음악 때문에 생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사람들이 작게 대화한 것도 맞았다. 음악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단지 사람들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천장에서 울려서 그런 것 같긴 했다.
글을 쓰려고 수첩과 볼펜을 가지고 나갔는데, 꺼내 보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각케이크를 포크로 잘라서 한 입씩 넣으며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아메리카노 맛은 한국과 똑같아서 달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뭔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있을 때의 피로감 같은 것만 점점 강해질 뿐이었다.
보통은 내가 앞에서 말한 첫 번째 타입, 오래 지나지만 않으면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있는 정도인데 커피를 다 마시고 스타벅스를 빠져나와 조용한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두 번째 타입을 이해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타입은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래 어울리지 못할 뿐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단절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도 그 사람과 오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 날이면 다시 볼 수도 있고. 만약 누군가 아까 스타벅스에서 나를 보았다면 바로 그 타입처럼 놀아도 내일 다시 만나서 놀고 오늘은 당장 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밖에서 어울리다 보니 점점 아파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쩔 수 있을까.
그런데 거리를 걷다가 아마 첫 번째 타입과 두 번째 타입은 정도의 차이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나 다른 첫 번째 타입의 사람들은 남들과 있다가 기운이 빠지더라도 그럭저럭 있다가 집에 가면 충전이 되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 '그럭저럭'이라는 것이 매우 작으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옆에서 보기에도 편해 보이지 않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다면 나 역시 지금은 방전과 충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을 뿐, 그 '그럭저럭'을 넘어서는 뭔가가 생기거나(환경의 변화처럼) 혹은 그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내가 그런 적이 없는 이유는 나는 지치면 심지어 회식이라도 곧장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가는 편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언젠가 아파 보인 적이 있어서 순순히 보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어쨌거나 오늘 특별히 알게 된 것은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 소리가 웅웅 거리며 울리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일 때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신경이 곤두서면 나만 손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카페에 갔다가 소리가 울려서 피곤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나? 하지만 고속터미널의 카페만 가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보통 때 대화하는 목소리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끄러운데 그곳에서는 그 에너지 때문에 활기가 나기만 했지 기운이 빠지지는 않았다.
자, 이제 별별 상상과 가설이 다 생긴다.
1. 감각 이화 현상 : 시각적으로는 사람이 별로 없고 사람들이 소곤소곤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청각적으로도 사람들이 작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실제 뇌에서는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고 소리가 뭉개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 때와 유사하다고 판단한다. 뇌의 판단이 시각과 청각으로 직접 받아들인 것과 차이가 있다. 그 혼란으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 때 기운이 빠지는 것과 착각한 것이다.
2. 감각 과장 현상 : 울림 때문에 소리가 뭉쳐져서 하나씩 파악하는데 실제로 분석이 불가능한 것을 계속 분석을 하니 알게 모르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쉽게 지친다. 그럴 필요가 없지만 뇌에서는 원래 자동으로 수행하는 활동이라 중지가 되지 않고 그냥 지쳐간다.
물론 이건 농담처럼 나열한 것이다. 오늘의 이스탄불 스타벅스에서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듯이 기운이 빠진 것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으니까 스스로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힌트를 더 축적하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대신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이제는 저 두 가지 카드가 미리 나와 있으니 'O, X퀴즈'처럼 하나씩 확인하면 되겠지.
- 단지 집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기 위한 백그라운드 앱이 리소스를 펑펑 소비하며 돌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수많은 <I>들에게 위로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