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질문은 강의실 문밖에 남았다
강의장 문밖에서 누군가 기웃거렸다.
눈이 마주쳐 가볍게 목례를 건네자,
그제야 쭈뼛쭈뼛 다가와 인사를 하셨다.
"저기... 제가 주로 밖에서 근무하는데, 저 같은 사람들도 AI로 뭐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도움이 될 만한 장면들이 몇 개 떠올라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그분은 멋쩍은 듯 웃으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어차피 일하면서 할 수도 없을 텐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런 거 알아서 뭐합니까."
그렇게 그는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불현듯 깨달았다.
지금껏 내가 섰던 강의장의 9할은
늘 사무직들의 차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니,
(영업직을 제외 하고) 현장 외근직 분들을 강의장에서 만난 기억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AI는 큰 무기가 될 텐데,
왜 그 기회는 늘 사무실 문턱에서 멈추는 걸까.
나는 요즘의 AI를 '지식의 유틸리티'라고 생각한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이제는 질문 하나만 던지면 방대한 지식을 바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똑똑한 도구에도 한계가 있다.
바로 '책상 물림'이라는 점이다.
AI가 배운 것은 대부분 정제된 텍스트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처럼 깔끔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날씨, 미세하게 달라진 기계음, 도면과 다른 배관의 위치.
이런 변수들은 글로 배울 수 없다.
이 빈틈을 메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현장의 베테랑들이다.
텍스트로 정리되지 않은 지혜,
수십 년의 땀으로 체득한 감각,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손끝의 진동만으로 문제를 짚어내는 직관.
그래서 글로만 세상을 배운 이 AI에게 진짜 일을 가르쳐줄 스승은 바로 현장에 있다.
그렇다면 이 경험 위에,
AI라는 방대한 지식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된다면 어떨까.
개발자들 사이에는 둘이 한 팀이 되어 일하는 방식이 있다.
한 명은 당장 눈앞의 코드를 쓰고,
다른 한 명은 전체 흐름을 본다. 그걸 '페어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이라고 한다.
나는 이 구조가 현장에서 AI를 쓰는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AI가 방대한 매뉴얼과 데이터를 쏟아내는 '드라이버'가 된다면,
현장 전문가는 그 정보가 지금 이 상황에 맞는지,
빠진 변수는 없는지 판단하는 노련한 '내비게이터'가 되는 것이다.
책상 앞의 AI는 결코 알 수 없는 현장의 맥락을 사람이 짚어주고,
사람의 기억력으로는 벅찬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채워주는 협업.
나는 이것을 '현장판 페어 프로그래밍'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진짜 혁신은
대회의실이나 보고서 속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현장 한구석에서 스마트폰을 든 베테랑이
AI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그 '페어링'의 순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강의장 문밖에서 기웃거리던 그분의 뒷모습이 자꾸만 밟힌다.
언젠가 그 거친 손끝에서 가장 세련된 답이 나오는 날을,
조용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