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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구하는회계사 Sep 06. 2021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욕구

아무도 나한테 글을 쓰라고 시킨 적이 없다. 내가 브런치에서 계정을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인 게 틀림이 없다. 그런데 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한테 숙제를 주고 나는 나한테 받은 숙제 때문에 힘들어한다. 내 안에 또 다른 누가 있었던 건가. 아, 바쁜 시즌 지나면 글을 자주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가도 쓰고자 하는 생각을 글로 옮길 단계에 다다르면 두려워진다.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서 좀 생각을 깊이 가져가 봤다.


정확한 답이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토픽 자체가 sensitive 하기 때문이다. "돈" 혹은 "투자"에 관심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은 쉽고 익사이팅하고 짧은 기간에 대박을 터뜨리는 기술(?)이나 기회에 대해서 "뭐 새로운 정보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글을 읽기 시작하겠지만 그와는 거리가 먼 콘텐츠임이 확실하다. 다들 쓸 만큼 다 쓰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다 써버리면 부자 되기 힘들어요"라고 외치는 사람한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게 더 당연하다. 둘째, 내 머릿속에 있는 콘텐츠들이 그다지 linear 하지 않기 때문이다. 뒤죽박죽이다. 변명을 하자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만, 글로 펼쳐놓으면 뒤죽박죽인 게 너무 드러나는 게 나 자신한테 거슬린다. 돈에 대한 이야기, 부자가 되는 이야기, 깊숙이 파헤치고 들어가면 심리, 철학이 얽혀있고, 가정교육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 (value system), 개개인의 유년기 청소년기 자라온 환경, 그리고 끝으론 "인간은 어디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나" 하는 belief system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토픽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나열할 수 있는 information 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사실 위의 두 가지 이유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껍데기일지도 모르겠다. 셋째 이유가 가장 근본적인 나의 두려움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글을 쓰기 두려워하는 세 번째 이유는, 타이틀에 써놓은 대로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욕구이다. 내가 이 브런치 플랫폼을 통해서 수익창출 같은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걸 꾸미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기 위해 홍보를 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만의 콘텐츠다 싶은 글을 올렸을 때 사람들이 "우와 이 말이 맞네. 야, 너도 이거 좀 읽어봐" 하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유가 판을 치고, 하트 아이콘 막 클릭하고 그런 걸 원하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는 인정받는 것에 갈급하다"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각자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엔 다들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인 거 아닌가. 근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든 생각이 있다. "He's not that good"이란 평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이다.  필요 이상으로 남들의 시선이나 남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건강하지 못한 자아의 한 표면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한국 사람들한테서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 어떤 영역에서든 excellence를 요구하며 웬만해선 인정을 하지 않았던 아빠의 교육방식의 역효과였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녀를 우수하게 만들고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삶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방식이 결국 자녀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제는 별 대수롭지도 않다.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렸을 때부터 뭘 하든 잘하는 축에 속했고, "넌 못하는 게 없네"라는 말을 가장 즐겨 들었고 으레 기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시작했는데 평균도 못할 거 같으면 애초 시작을 하지도 않았다. 무엇이 됐든 단순하게 그걸 함으로써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꼭 잘해서 남들한테 인정을 받아야만 그제야 즐거움을 얻은 건 아니었나 싶기까지 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완전 허점 투성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는 그냥 제 생각을 기록해 놓는 개인 창고 같은 곳이에요"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누가 한 명이라도 글을 읽고 "너무 큰 도움이 됐어요", "더 읽고 싶어 져요. 자주 써주세요"라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었다.


심지어 이번 글도 콘텐츠 없는 싸이드 노트에 불과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내가 지금 돈, 부, 행복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누가 15년 전, 20년 전의 나한테 알려줬다면 난 지금 그 사람한테 너무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에 이걸 안 나누고 혼자 싸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나중에 후회하고 나 자신이 미워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 경험과 그 사이사이에서 얻은 인싸이트들을 나누는 걸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사실 나의 불완전함 중 하나에 대해 얘기한 것 같지만, 은근히 바란 건 독자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깊숙이 파고들어보고 혹시나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고 있던 본인의 불완전함을 드러내 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financial independence를 이루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굉장히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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