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최근에 알게 된 브런치. 뭐든지 좀 신박해 보이면 우선 가입 먼저 해보는 스타일이라 가입은 했는데 보니까 뭐 글을 발행하려면 "작가 신청"이란 걸 해야 되네? 그래서 예전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글 하나 옮겨놓고 대충 작가 신청했더니만 거절을 당한 거 아니겠어? 갑자기 끓어오르는 승부욕. 솔직히 내가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작가"라는 타이틀 줘도 받고 싶지 않은 건데 그래도 거절당하니까 기분이 별로더란 말이야. 그래서 글 두 개 더 옮겨 놓고 이번에는 좀 정성 들여서 (작가 신청 문답지에) 신청했더니 나도 "작가 승인"됐다.
브런치 처음에 들어오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고 쓰여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 난 내 글이 "작품"이 될 거란 생각도 안 해봤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겪어온 것, 그 속에서 배운 것들 나눠서 읽는 사람들도 좀 더 행복한 삶 살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솔직히 딱 그 마음 하나라고 하긴 어렵다.) 중2 때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 한국어로 된 책이라고 하면 신앙서적 빼곤 2-3권 될까 말까 한데, 나한테서 한국어로 작품성 있는 글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만무하다" 정도의 단어는 들어본 적은 있으나 확신이 없기 때문에 네이버 사전에서 확인을 거쳐 사용한다.) 어쨌건 브런치는 나와 어울리는 곳 같지는 않아서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티스토리나 다시 정리할까 생각도 들었다가 "why not?"이란 마음으로 우선은 시작해보기로 했다.
글을 하나 둘 발행한 다음에 내 글을 "라이킷"해 준 사람들의 글이라든지 메인에 뜬 글이라든지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진짜로 여기 진짜 "작가"들만 글 쓰는 곳이었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왜 브런치에 글을 올렸을까 다시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글 쓰는 게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글도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리고 어떤 글들은 며칠에 걸쳐서 고치고 고치고 하는 경우도 많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가도 종종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 거지?"
내 마음을 살짝 들춰보면 "좋아요"가 눌리는 횟수에 기분이 좋아지고,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라는 종류의 반응들로 나 자신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딱 그 선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농구 연습이나 드럼 연습을 미친 듯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난 아직도 농구 연습을 자주 하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동네 농구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기분이 좋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또래치고는 "내가 지금 죽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꽤나 많이 하는 편이다. 누구보다도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일찍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책에서 나오는 7개 habit 중 두 번째인 "Begin With the End in Mind"(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는 유난히 더 많이 생각하면서 사는 편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서 돌아볼 때 내 삶이 이 세상에 유익한 삶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나를 브런치라는 곳에서 글을 쓰게 만든다. 내가 몇 년 전 블로그를 통해 봤던 것처럼 내가 투자하는 이 시간이 많진 않더라도 몇몇에겐 깜깜한 밤길의 작은 촛불 같은 역할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첫째,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그리고 둘째, 이 세상이 그들을 봤을 때 "태어나줘서 감사한" 존재로 사는 것 이렇게 둘이다. 그리고 나의 최대 관심사는 앞에 말한 두 가지를 이루는 것을 최선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번째 항목은 나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현재 tax accountant(세무회계사)로써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언젠가는 직장을 옮길 수도 있겠지만 어디가 되었든 tax accountant로의 커리어를 앞으로 15-20년 더 유지하다가 은퇴하면 편하고 여유 있게 노후를 즐기다가 떠날 수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모으고 또 모은 돈으로 잘 살다가 떠나도 모자랄 거 없는 인생이 되겠지만, "태어나줘서 감사한" 존재로 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뚜렷한 하나가 이것이다. 기록하는 것. 남들이 지나가지 않은 길을 지나갔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게 있고, 또 비슷한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더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것들을 부족한 글솜씨로 잘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