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살이2_바우길 주말 다함께 걷기 따라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강릉 최북단에 있는 향호를 자주 갑니다. 집에서 가까워서요. 향호는 주문진 바다와 연결된 석호입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호수를 석호라 하는데요. 강릉에서 가장 유명한 석호는 경포호지요. 명성답게 주변에는 경포대, 월파정을 비롯해 각종 모임(계)에서 지었다는 정자들이 늘어서 있고 허균허난설헌 생가터며 연잎밭, 각종 조형물들까지 사람 손길이 닿은 흔적이 즐비합니다.
향호는 좀 다릅니다.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조용한 호숫가다운 곳입니다. 바로 근처에 주문진해수욕장의 BTS 정류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향호는 대부분 주민들의 산책코스일 뿐, 관광객들의 발길은 드문 편입니다. 그래서 향호에 더 자주 가게 된 것도 같습니다. 데크가 잘 나있고 겨울에는 새 구경을 하기 좋은 데다 한 바퀴 돌면 약 5천보 정도를 걷게 되는 꽤 편한 걷기 구간입니다. 조용히 걷고 싶을 때 향호를 한 바퀴 돌거나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도 합니다. 향호 안쪽에는 드문드문 집들이 있고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기도 하지요. 해가 지면 거의 빛이 사라지기에 그전에 향호에서 나오지만, 향호는 해질 무렵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강릉에서 서산으로 지는 노을빛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고즈넉히 보기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향호(香湖)라는 이름은 고려 때 동해사면을 흐르는 계곡의 하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는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향나무가 묻혀있는 호수인거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이 향나무가 빛난다고 하는데 해질 무렵 향호에 가면 향나무빛은 아니지만 일몰의 빛을 반사하는 향호를 만날 수 있습니다.
향호 안쪽으로 바우길 13구간이 있습니다. 이전에 향호를 걷다가 집에서 가까운 바우길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을 걸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바우길 코스는 향호에서 군부대 쪽으로 난 길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요. 원래부터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군부대 쪽으로 난 길로 가는 사람은 아예 없는 편이라 약간 망설이다 너무 인적이 드무니 가지 않는 편이 좋겠군, 갔다가 괜히 무서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도 있겠어 하고 향호만 돌다 온 적이 있습니다. 향호 안쪽으로는 향호저수지가 있는데 지도를 보면 바우길 13코스는 그 저수지까지 길이 연결되어 있고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다시 향호로 돌아오게 됩니다. 저수지까지 한 번 차를 타고 가본 적이 있는데 역시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라, 혼자 걷기는 좀 무리겠다 싶은 곳이었지요.
한번쯤은 집 근처니 꼭 가보고 싶었던 이 구간을 바우길 주말 다 함께 걷기를 따라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바우길 주말정기걷기는 사람들이 바우길과 친근해질 수 있도록 매주 토요일 10시에 함께 바우길을 걷는 건데요. 바우길 홈페이지(https://www.baugil.org/)에서 주말 걷기 코스와 모임 장소 등을 공지합니다. 곧 600회 주말걷기라 하니 몇 년째 주말걷기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예전부터 바우길 걷기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왠지 어려워 그동안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토요일 10시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출발지인 주문진 해수욕장 주차장에는 약 6, 70명 정도의 인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처음 10분 정도는 걷기 안내와 바우길 걷기를 처음 온 사람들에게 바우길 배지, 바우길 안내지도를 나누어주는 등 너무 친절해서 ‘우와 이럴 수가’ 싶었는데, 심지어 13구간 구간지기라는 분께서는 바우길을 완주하신 기념으로 떡을 맞췄다며 기념떡을 하나씩 나누어주셔서 ‘세상에, 인심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다니, 역시 강릉 살기를 잘 했어’ 하고 또 생각하였지요.
주문진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지하도를 지나 향호로 가는 길까지는 익숙했지만 그 다음 군부대 옆길을 지나니 소나무 숲이 펼쳐졌습니다. 혼자 안 오기를 잘 했군 싶게 만약 혼자 걸었다면 정말 나밖에 없을 길이 펼쳐집니다. 물론 저처럼 겁이 많지 않다면 혼자 걸어도 되지 않을까 싶게 길 중간중간 바우길 이정표가 나풀거리고 있고 길 상태도 좋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너른 잔디밭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어 향호저수지로 향하게 됐습니다. 물을 메운 자리에 여전히 버티고 있는 나무며 사람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겨울 호숫가 풍경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같이 걷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느라 이야기를 듣는 데 더 귀기울이다보니 풍경은 조금 뒷전이었지만 같이 이야기하며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엄청난 행운이지요.
바우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봐야지 싶은 고즈넉한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15km 걷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솔숲이며 갈대밭이며 저수지 풍경이 이어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조차 파란 하늘 아래 빛이 납니다.
향호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어여쁜 숲길을 걸어 향호로 돌아오니 겨울 향호답게 푸른 물살이 빛나고 새가 몇 마리 자리하고 있습니다. 새 이름을 알고 나무 이름을 알고 그렇게 좀 더 자연과 가까워지며 사는 데 강릉은 좋은 곳이니까, 앞으로 좀 더 그렇게 되겠지요. 좀 더 기온이 내려가 향호가 얼어붙게 되면, 그때 또 향호의 풍경은 어떨까 어느새 향호가 얼고 녹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강릉에 살았구나 싶습니다.
강릉 최북단 호수 향호에 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강릉과 주문진을 잇는 300번 버스를 타고 종점 향호리로 가는 겁니다. 강릉 여행을 하며 시내도 돌고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 데나 가고 싶은 날 300번을 타고 주문진 방향 종점에 닿는다면 향호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습니다. 향호를 한 바퀴 돌고도 부족하다면 안쪽 마을이나 바우길 어디를 걸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호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득 이렇게 멋진 버스 여행 노선이라니, 하며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곧 생활노선이던 300번을 타고 끝과 끝을 오가며 강릉 여행을 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