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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Mar 12. 2022

아직, 있다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1월이 되자마자 하루종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잘 모르겠어서 걷고 싶었던 것 같다.



읽은 시 중 기억에 남는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그 시가 특출나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서 자주 그 시를 떠올려서일 거다. 이성복 시인의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가 그렇다.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해가 땅에 꺼지도록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다

길에서 창녀들이 가로막았다


어쩌면 일이 생각하는 만큼 잘못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도 했다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가슴은 여러 개로 分家하여 떼지어 날아갔다


(후략)




대학생이 되며 처음으로 맞보았던 자유 속에서 많이도 걸었다. 캠퍼스는 걷기 좋은 길이 많았다. 어떤 날은 음대를, 어떤 날은 대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생각을 비워내고 생각을 쌓고, 어찌 보면 모래성 같지만, 마음의 지지대 같은 것을 마련했으리라 믿고 싶다.  



몇 보를 걷는다는 개념도 없이 기분이 좋아도 걷고 놀자고 걷고 기분이 안 좋아도 걷고 친구들과 걷고 혼자도 걷고, 학과 과실에서 키우던 강아지 어깨와도 걸었다. 자동차는 커녕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 하나도 없던 시절 걸으며 비워내고 쌓아내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 습관이 남아서인지 1월이 되자마자 하루종일 걷고 싶었다.



지금 사는 강릉 바닷가에서는 북쪽으로 바닷가길을 따라 걷거나 남쪽으로 바닷가길을 따라 걷거나 할 수 있다. 북쪽으로 가면 주문진까지 약 10km가 될까 말까한 거리고 남쪽으로 가면 안목까지 20km가 될까 말까한 거리다. 걸으며 털어내고 비워내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으니 띄엄띄엄은 다 걸어봐서 모르는 길이 없게 대부분 걸어본 길이었다. 그런데 한번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쭉 걸어본 적은 없네 싶어 1월이 됐으니 쭉 걸어볼까 싶었다. 생각이 쌓여가는데 답이 안 나서였을 거다. 걷고 오면 어떤 답이 생기기는 할까 의문스럽다가도 그래도 걸어볼까 싶었다.



12월 24일 밤에 내린 폭설이 1월 내내 동해바닷가에 남아있었다. 차도는 치워졌지만 인도는 차도에서 밀어놓은 눈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구간이 많았다. 바닷가 인도는 내 집 앞 눈치우기를 하는 구간도 아니니, 걷다 보면 곧 빙판이었다. 1월이 시작되자마자 걸어볼까 했던 생각은 실현되지 못했다.



2월은 추웠고 무언가 하고자 했다. 하루를 다 빼낼 여유가 없었던 것은 핑계일 테지만, 2월이 그렇게 주섬주섬 가고 3월이 시작된 지 4일째 되던 날 걸어서 일을 보며 주문진 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일이 잘 되지 않지만 어떤 통로가 있을까, 그 통로가 정말 빛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까 싶은 날이었다. 통로가 연결이 되든 안 되든 나는 계속 걷고 계속 살기로 한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데 흔들리고 있었다.



약 10km 정도 될까말까 한 거리를 걷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얇은 패딩을 입고 나갔는데 더워서 곧 벗고 봄이 왔구나, 일이 잘 되든 말든 아름답구나, 하며 걷다 바다를 보곤 했다.



롱패딩을 입고 바지를 걷은 채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피해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곤 했다. 그는 갈매기를 헤치고자 다가간 게 아니므로 갈매기들도 그도 서로 인근에 자리하고 앉아 볕을 쐬는 것을 바라보며, 봄이 왔나보다 싶었다. 외지에서 와 이렇게 봄을 맞는 거겠지, 좋구나, 하는 걸음이었다. 해안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없어 한적했다. 잠시 멈춰선다고 해도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꼭 도착해야할 약속시간도 없이 걷는 걸음이었다.



소돌해변에 앉아 정말 바다가 예쁘구나, 이게 봄 바다구나 감탄하며 앉아있다 그가 산불이 나 출동한다는 연락을 주민회에서 받았다. 울진에 큰 불이 나서 대기 중인데 영월로 출동한다고 해, 그래도 괜찮겠지, 실은 별일 아니겠지, 며칠 전에도 동해로 불 끄러 갔다 왔다고 했고, 직업이 그런 거니까, 하며 하루 지나면 되는 줄 알았다.



종착지인 주문진 해수욕장에서 작은 맥주도 한 캔 사마셨다. 작은 맥주 한 캔에도 얼굴이 벌개지지만 평일 주문진 해수욕장은 한산했다. 맥주를 마신 장소인 주문진 해수욕장의 나무 데크는 지난 추석 연휴였던가 해수욕장이 문 닫은 코로나 마지막 시즌이었나 그리 춥지 않던 여름과 가을 사이 몸빼 비슷한 옷을 입은 흑인 여성이 배낭을 메고 걸어 오길래 이 밤에 어디를 가는 걸까 싶었는데 다시 돌아오니 그녀가 혼자 비키니를 입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즌이었으니 한국여행을 들어온 것은 아닐 테고, 한국에 살며 혼자 여행을 온 그녀가 이렇게나마 만끽하는 자유가 좋아, 마음이 흐뭇해진 곳이었다.



거기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영화 '안경'을 떠올렸다. 그날 바다는 딱 영화 '안경'에 나올 법한 바다였고, 며칠 전 친구와 여기 생활은 영화 '안경' 같은 것일 거라 여겼던 친구에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얘기를 해서였을 수도 있다. 20대에 그런 영화를 안 봤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생각도 하고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거의 비슷한 데 와버렸구나, 그렇게 오고 싶었는데 싶다가도 나만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해도 되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순간을 짚어야 한다면 짚어내게 될 순간, 죽을 때 인생이 필름처럼 돌아갈 때 이 순간도 들어오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다 날이 흐려져 말도 안 되게 갑자기 왜일까, 일기예보를 봤다. 곧 비가 온다고 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종점이자 기점이기도 한 곳 다음 정류장에서 종점이자 기점이기도 한 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한바탕 흙비가 왔다는데 다행히 흙비를 맞지는 않았네 싶었다. 집에 와 텔레비전을 켜니 온통 산불 얘기였다. 그가 보낸 현장사진이 너무 무서워 내 상상력이나 공감능력은 정말 모자라구나 싶었다. 그동안 그가 산불을 끄러 갔다 했는데도 행복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가 받고 있다는 대우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게 떠오르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화남도 있었을 거다.



눈은 뜬 아침은 강릉 옥계에 산불이 났다는 안전알림문자로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데 아침에 오는 연락 치고 좋은 연락은 없다. 지금까지 인생에서의 경험 중 하나다. 다시 그 느낌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불은 동해로 옮겨 붙었다. 내가 알던 곳들이 화마를 입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하루가 갔다. 유튜브 중계를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아팠다. 불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그 역시 일주일 내내 모두 걱정 중인 주민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3일에 한번씩 밤에 집에는 무사히 왔다는 연락이 왔다.


옥계에서 난 불로 이틀 뒤 강릉 전체는 연기에 휩싸였다. 40km 거리인데도 탄내가 날 정도로 연기가 강릉 하늘을 뒤덮었다. 시내나 경포에 또 불이 났나 의심스러워 자주 뉴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불이 난 건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남쪽에서 난 연기가 강릉 하늘을 뒤덮었다고 했다. 재난영화를 보며 지구에서 큰 폭발이 있고 그 폭발로 인한 연기가 하늘을 뒤덮으며 광합성이 되지 않고 공기가 좋지 않고 거기서부터 모든 게 얽히며 망가지는 과정이 나온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실감이 됐다. 온통 뿌연 하늘, 매캐한 냄새가 이틀 정도 지속됐다.



코로나 3차 접종을 예약해둔 상태였다. 3차 접종은 별로 힘들지 않다는 말을 들어, 하루 잘 누워있으면 낫겠지, 싶었다. 팔이 좀 뻐근한가 싶고 졸리고 피로해 누웠다가 깼다가 좀 힘이 나는 것 같으면 움직였다가 다시 누웠다가 하며 다음날이 왔다. 대통령 선거날이었다. 선거 장소가 2km 정도니 걸어갔다 오면 되겠구나 싶었다. 팔 아픈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은가 하며 아침에 움직이다 보니 온몸의 피로가 몰려왔다. 누워있다가 졸다가 다시 일어나 차를 타고 가 투표했다.



산불이 났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이렇게 큰 불이 나는 건 어쩌면 앞으로 안 좋은 일을 예고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개표방송 초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괜찮겠지,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하는데 판세가 뒤집혔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회복하고 끝나겠지 하며 잠이 들었다.


꿈에서 4표 차이로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 꿈을 꿨다. 이렇게 4표 차이로 결과가 나면 다시 선거를 하는 건가, 개표를 다시 다 점검하는 건가, 4표 차이로 결과가 정해지는 건 어떻게 하지, 아 악몽인데, 하며 눈을 떴다. 새벽 4시였다. 비몽사몽간에 방송을 트니 당선인이 연설 중이었다. 악몽이구나, 어쩌지, 한동안 앉아있다 다시 잤다.



누가 당선되든 하늘에 해는 뜬다. 당장 달라지는 건 없다. 앞으로 조금씩 달라져가는 것을 보게 될 거다. 그 달라짐이 커지고 눈덩이가 되어 어딘가 큰 데가 무너질 때쯤 알게 될 거다. 이명박의 4대강처럼, 박근혜의 세월호와 블랙리스트처럼, 그때쯤은 늦다. 늦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무력감과 피로감에 쌓여있었다. 다시 또 여기구나 싶은 어리둥절함에 쌓여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기로 한 일을 해야지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집 앞 커피집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다. 마침 원두도 떨어졌고 망연자실을 떨쳐내기 위해 전날 밤에 생각한 거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 한 달에 한 번은 가고 싶지만 내가 움직이는 시간과 요일이 커피집 시간과 맞지 않아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시간을 맞춰서라도 갈까 싶다가도 이사 와서 일도 안 하며 커피집 가는 사치까지 누리는 건 좀 무리구나 싶기도 했다. 타이밍이 맞아 가족이나 친구가 놀러왔을 때 가곤 했다.



도착하면 문 닫기 1시간 전인데도 커피집으로 걸어갔다.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 가다 보니 남쪽에만 피었다고 생각한 매화가 여기 북쪽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망연자실하지 말기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제목은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였다. 오래 전 빌려놔 조금씩 읽고 있었는데,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 그 교육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이다. 성 교육도 정치 교육도 생태 교육도 하지 않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의 세계를 세세히 비판하며 대안까지 제시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니 그가 비판하는 상황에서 현 정권이 그 무엇 하나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와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바꿀 수 없는 켜켜이 쌓인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권위주의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관습들이 얽히고 설키며 이해관계 집단을 만들어내고 그 모두를 해체하고 다시 판을 짠다는 것은 혁명이다. 그런 혁명이 5년 정권으로 불가능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해결책이 안 보이는데 집값은 더 올라 그 체계는 더 공고해져버린 듯한 지금의 현실이 선거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들과 선거 얘기를 하며 TV조선 예능을 보는 부모님 얘기가 나왔다. 왜 그들이 그 프로그램을 볼 수밖에 없는지, 그 예능이 자식보다 낫다는 데 우리 모두 동의하며 그들의 선거 전략이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했다. 우리가 이해하지 않으려 한 거기, 그 지점에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하려고도 이해하려고도 공감하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들이 지금 여기 있다. 지금 이 결과는 우리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별의 기운 얘기가 나왔다. 이야기가 끝난 뒤 좀 걸어야지 싶어 바닷가를 걷다 하늘을 보니 정말 달과 별이 떠있었다. 연기에 가려 한동안 안 보이던 별이라 그런지 달과 별이 떠있는 게 신기했다. 반달 위아래로 백조자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별이  빛났다. 달 위 아래로는 토성과 목성이 있다고 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토성과 목성이라고 지인의 과학 전문가가 알려줬다. 핸드폰 사진으로 찍으니 달 위 아래로 별 두 개만 반짝이며 찍혔다. 모든 별이 똑같이 빛나는 것 같은데, 핸드폰으로 찍으니 가장 빛난다는 가까운 별 두 개만 반짝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밤에 나와 걷는구나 싶은 날이었다.



바다 바로 앞 모래사장에 가 서니 바다 위로는 북두칠성이 빛나고 있었다. 핸드폰 사진 속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북두칠성이 환했다. 방향을 알려준다는 그 별이 빛나고 있었다. 북두칠성을 보며 보석은 어디에나 있는데 잘 보이지 않거나 보지 않거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오랜만에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러다 발 아래 모래 속을 보니 꽃무늬가 찍힌 동그라미가 있었다. 석회질 같은데 이렇게 예쁜 무늬가 어떻게 이 바닷가에 있을 수 있는 거지 하며 이게 하늘이 내려준 보석인가 했는데, 좀 더 걷다 보니 또 보였다. 2개를 주워 오고 다음은 누군가의 보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나의 부모의 아픔과 외로움을 들으려 했던가, 그의 기쁨과 재미에 대해 알고 있나, 그와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나, 모두 아니었다. 부모님과 정치적 마찰은 없지만, 대부분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정치적 마찰이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같이 보려고 한 적이 있던가. 부모님이 보았던 것, 보고 있는 것을. 천천히 얘기를 나누려고 했었나. 나 역시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화범이 된 그도 누군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너무 많은 상처를 내고 세상을 할퀴었으나 그도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절망해도 소용없다. 절망할 권리도 없다. 실은 내 인생 사느라 주변도 정치도 별로 관심 없이 살았구나, 자기에 절망하고 처지에 힘들어할 뿐, 내 인생 사느라 그 누구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잘하는지 계속 보는 수밖에 없다.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지 말고 다 망했다고 말하지 말고, 지금부터, 앞으로 우리 부모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부모세대가 뭘 원하는지 듣고 대화해야하듯, 하나하나 잘하는지 지켜보고 아니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는 큰 눈덩이가 몰려와 망쳐버린 뒤에 수습할 수도 없이 돼버린 뒤에 울지 않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제라도.



달이나 별은 신기하게도 내가 걷는대로 따라오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정말 버스를 타고 보면 달이나 별이 계속 따라오는 게 신기했다. 달이나 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멀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때는 대단한 일 같았는데, 알고 봐도 대단한 일이다. 달이나 별은 계속 같이 걷고 있다. 보지 않았을 뿐이다. 걷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를 계속 들었다.


봄이 온다는데 이주일 동안 내내 흐리다고 한다. 흐린 건 싫지만 비가 오는 건 다행이다. 불이 꺼지라고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비가 온다. 모두를 가질 수 없다. 비가 와서 불이 꺼진다면 감사하자.  


다음날인 오늘 밤 바다에 나가니 동해 바다가 이런 식으로 예쁠 수 있다니 싶게 예쁘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바다가 매화가 주는 위로를 받다 돌아왔다.


무조건적인 긍정 혹은 부정과 식민지시대에 시작된 고질화된 경쟁의식이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했을 거다. 관심과 공감을 시작하는 게 힘이라고 믿고 싶다. 모두가 그를 잊었을 때 그는 그림자가 되고 누군가 그를 기억할 때 그는 빛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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