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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겐남 끝판왕이었다니

그것도 모자라 퍼포머티브 맨이라니.

by 하이브라운
테토남 비켜라, '에겐남 끝판왕'이 나타났다.

지난 주말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 제목이었다. 흥미롭게 기사를 읽어 가던 중, 뭔가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진다. 신문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기사를 다 읽고, 어처구니없게 한참을 웃었다.


소셜네트워크에 '퍼포머티브 맨'이 유행이라 한다. 인간의 성격과 연애 유형을 성호르몬 기준으로 나눈 '테토-에겐 이론'에서 발전된 듯하다. 퍼포머티브 맨은 실제로는 에겐남이 아니면서 에겐남인 척하는 남성이다. 쉽게 말해서 '보여주기식 남성'이라는 것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계속 글을 이어가겠다. 기사는 여기에 더하여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힙하고 감성적, 개방적이며 훌륭한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스스로를 연출한다는 비난 내지는 조롱이 담긴 표현이 통용되었다고 설명해준다. 오마이갓.

다행히 이제는 비난과 조롱을 넘어 재미를 주는 소재로 확산되어 풍자나 놀이로 소비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MZ세대 여성 동료가 많은 직장에서 에겐남, 테토남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친절한 MZ선생님들은 직업에서 몸에 굳어진, 자세한 설명하기를 곁들여 준다. 남성적인 테토남의 시대를 지나 섬세하고 감성적인 에겐남이 요즘은 대세란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다정다감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다.


에겐남의 끝판왕인 퍼포모티브 맨의 주요 외적 특징을 풍자한 것을 살펴보면

-초록색 말차라테를 손에 들고

-귀에는 유선 이어폰이 꽂혀 있다

-'라부부' 인형이 달린 천 소재의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

-헐렁한 청바지를 입으며

-가방이나 손에는 고전, 철학, 심리학 서적이 있다

-통기타와 같은 악기와 LP레코드판도 조금 있어 보인다.


내가 테토와 에겐 중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는 타인이 평가할 문제라 차치하고서라도 퍼포머티브 맨의 모습 중 아주 많은 부분이 나랑 겹치는 웃기지만 어이없는 상황, 어이없지만 계속 웃기는 상황이 생겼다.

이제부터 변명을 해야겠다. 브런치에 이렇게 진솔하게 글을 쓴 경험이 적었는데 마침 잘 됐다. 진심이니 꼭 믿어 주셨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을 갈 때, 에코백을 주로 들고 다닌다. 여름에는 특히 등에 땀이 차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타인이 이동 중에 내 백팩에 방해를 받지 않아서 좋다. 여기에 얼마 전 대구 여행을 갔을 때, 요즘 유행이라는 '라부부' 인형을 초등 아들이 사서 내 가방에 달아주었다. 아들이 달아주었으니 감사히 달고 다녀야지 부끄러워도 어떡하나. 올해부터 통이 넓은 바지를 주로 산다. 학교에서 일하며 학생들과 많은 활동을 하며 지내는지라 헐렁한 바지의 편함을 놓칠 수 없다. 지난달부터 철학과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철학과 심리학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이라는 개인적인 판단과 생각보다 재밌게 읽혀서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독서를 시작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신경 쓰이는 것은 빨리 처리하거나 제거하는 성격인데, 충전은 늘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무선이어폰이 아닌, 유선 이어폰을 자주 가지고 다닌다. 변명이 너무 길어지지만 끝까지 해야 할 것 같다. 억울함이 커서. 첼로는 작년부터 배우고자 미리 악기를 구매했었고, 말차라테나 녹차라테는 하루 카페인 용량을 아메리카노 2잔으로 스스로 정하여 그 이상 마셔야 할 때는 쌉싸름한 맛이 괜찮아 마시곤 한다.


어떻게 보면, 의식적으로 설정한 모습에 선정되는 것도 참 영광스러운 일이다. 힙하고 개방적이며 감성적인 모습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기사가 나오면 도저히 내 성격상 지금 모습 그대로 외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의류브랜드의 감사제라는 세일 기간에 옷을 샀다가 어머니처럼 보이시는 분과 커플티가 된 것을 확인하고 지금도 그 기간에는 옷을 사지 않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이제 퍼포머티브 맨의 모습에서 절반은 바꿔야 한다. 말차라테는 바닐라라테로, 무선이어폰을 하나 구입하고, 책이 들어갈 크기의 크로스백을 하나 구입해야겠다. 어쨌든, 유행은 돌고 또 도는 거라 테토남이 대세가 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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