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낭만과 약속이 주는 감동

다큐 3일 - 안동역 편을 보고

by 하이브라운

주말, 구독하는 신문의 한 칼럼 소재가 '다큐멘터리 3일 - 안동역'이었다. 글을 읽고 관련 내용을 더 찾아보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큰 화제가 되었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욱 궁금하여 유튜브에서 해당 영상을 시청했다. 오랜만에 영상을 통해 느끼는 감동과 울림을 쓰고 싶다.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 3년 전, 이사를 오면서 신청했던 TV와 인터넷 결합상품은 인터넷만 3년을 쓰고 있었다. 약정 기간이 끝나서 통신사에 전화하니

-고객님께서 지금 쓰시는 상품은 단종되어 해지하시면 더 이상 가입할 수 없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가족이 TV를 보지 않아서요.

-아. 그래도 월드컵과 올림픽이 다가오는데, 스포츠는 TV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에 TV가 없어요.(정말 시청할 TV가 없다.)

-...... 네 알겠습니다. 인터넷 단독 상품으로 변경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2014년 이전에 유일하게 챙겨 보던 프로그램이 '다큐 3일'이었다. 일요일 밤시간, 잔잔하게 인간미 넘치는 내용으로 주말을 마무리했던 좋은 기억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은 종영되었고, 시청자의 많은 관심과 요구에 특별판이 제작된 듯하다.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던 기차 여행지 중 한 곳이었던 안동역에서 전한 청춘의 풋풋함들, 그 속에 있었던 작은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내용을 보면 대단히 큰 일은 아니지만, 내 청춘의 기억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해당 영상과 추억이 교차하며 화면에 빠져들었다.

대학시절, 청량리역 광장에 시계탑 밑에서 모여 길 건너편 전통시장에서 삼겹살을 들지도 못할 만큼 사고, 역에 붙어있던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여러 식료품과 안줏거리를 산 다음 시계탑 밑에서 원을 그리며 마주 보고 서서 뭐라 뭐라, 으쌰으쌰, 샤바샤바 하다가 급히 비둘기호 기차에 올라타 대성리, 청평 등을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 때 무슨 엠티를 그렇게 많이 갔던지 기억의 대부분이 엠티의 추억이다. 4년간 족히 20번은 넘는 것 같다. 그러한 추억들이 더욱 영상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영상에서 '낭만'과 '약속'이라는 두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약속: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사전적 의미를 곱씹으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작은 이벤트를 숨죽여 지켜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신문의 칼럼을 쓴 소설가는 약속의 진정한 의미는 만남에 있는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 모든 시간들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 실망하고 좌절했던 매시간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약속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진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덧붙였다.

약속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약속의 모래가 조금씩 떨어지는 동안 온전히 내 삶의 모래만 쌓였을까? 아닐 것이다. 그 사람과의 추억과 훗날의 기대가 차곡차곡 쌓여 모래시계가 종료되었으니 그것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어쩌면 실제 만남의 감동보다 시간을 관통하며 간헐적으로 상기되고, 기대했던 생각들이 만들어낸 감동이 비교할 수 없이 클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세대를 적당히 나누고,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이번 영상을 보고 관련된 여러 글들을 읽어 보았다. 세대의 구분 없이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포인트는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괜스레 기분이 좋다. 퍽퍽하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조금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굳게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마음인 줄 알았는데, 모두들 따뜻함을 감추고 있었구나. 아니 난 아직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구나. 추억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감동 또한 그것이 사람과 관계있는 것이라면 더욱 진하게 다가옴을 알았다. 결론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제목 사진 - chat gpt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