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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MRH Dec 23. 2022

만물의 영장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어렸을 땐 그렇게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난 저 말을 들으면 코웃음 친다.

'웃기고 있네.'


  동물학에선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터부시되어 왔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도 동물이라면서 은연중에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선을 그어왔다. 심지어 옛날엔 문화는 인류만이 향유하는 것이고 인간의 직립보행은 엄청난 진화이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이성적이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야 저 말들 중 옳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화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도 갖는다. 영장류는 물론이고 바다의 포유류인 돌고래도 그들만의 놀이와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개미나 꿀벌 역시도 그들만의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벌들의 소통 체계가 연구되기도 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현 인류의 조상은 호모사피엔스이고 호모사피엔스는 우리가 인류학 시간에 배워왔던 인류의 발전 마지막에 해당하는 종이다. 그 호모사피엔스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왔느냐를 따질 때 우린 흔히 인류의 조상으로 영장류를 든다. 유인원이라 부르는 그들 말이다. 하지만 유인원을 비롯해서 그 비슷한 원숭이과 동물들은 죄다 네발 동물이다. 두발 동물은 인간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직립보행은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옛날엔 얘기했었다. 두 손이 자유로우니 도구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라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인간 외의 타 종들이 직립보행하지 않은 이유는 직립보행이 그렇게까지 이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척추가 받는 힘이 배로 들어 인간은 그 어느 동물보다 허리가 약한 동물이 되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기엔 대부분의 영장류들은 두 손, 심지어는 발도 손처럼 쓴다. 꼬리가 달린 원숭이과는 꼬리를 이용해 몸을 나무에 지탱하고 나머지 두 손과 두 발을 자유로이 쓴다. 그에 반해 인간은 부자유스럽다. 어쩌면 인간은 뇌에 모든 스탯을 몰빵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이성적이라는 말. 모든 인간은 이성보단 감성이 앞선다. 감정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감성적인 느낌이 먼저 들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먼저 한다면 그건 AI가 입력된 값을 출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린 가치판단을 먼저 한다. 그리고 가치는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째서 이토록 나약한 인간이 오늘날 개체 수가 조절되지 않을 정도로 세계를 집어삼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이 맞물려 일어난 것일 거다. 어쨌건 인간은 지구상에 발 디딜 수 있는 곳이라면 전부 디디고 살고 있다. 이 정도로 종의 생존이 성공한 적이 있었나. 인류가 스스로에게 흠뻑 빠질 이유는 충분했다. 


  인간과 그들이 키우는 가축의 수는 이제 지구의 절반 이상을 넘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은 야생동물이 사는 땅까지 파고 들어서 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인간은 공공연한 지구상 최강의 동물이다. 진짜로 '만물의 영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류는 무슨 일을 했는가. 자연에는 없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또 다른 인간을 해했으며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의 삶을 마음대로 조종했다. 인간은 신이 되어 타 종족의 개체수를 조절했고 강제 이주시켰으며 지형을 바꾸기도 하고 자연을 예측하기도 했다. 인간이 정말로 완벽한 신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 역시 그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 종 중 하나일 뿐이다. 어느 종족이나 그렇듯 인간 역시도 불완전하고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세상을 군림하고자 했던 인간은 이제 너무 많아져 버린 동족들과 싸워야 하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지만 여전히 지구의 자원에 의탁한다. 


  인간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에 취해있었다. 우리가 이뤄 온 역사가 아니면 나약한 동물에 불과한데도, 결국 지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구성원인데도, 너무 많아져 버린 인간과 가축들을 감당하지 못하는데도 인간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최근 과학자들의 기후변화와 환경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었다. 최근 몇 년 새에 동물권과 환경권에 대해 말하며 비건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코로나 이후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과 쓰레기 문제가 제기되었다. 환경 문제는 한참 이전부터 나왔지만 근래 들어 가장 크게, 또 가장 넓게 퍼진 것 같다. 모더니즘에 취해 있던 근대엔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며 자부해왔었지만 이젠 그 누구도 인간이 지구를 군림할 정도로 위대한 동물이라고 자부하지 않는다. 우린 우리가 한 일들의 오류를 인정했으며 그것이 전 지구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바보 같지만 천재 같은 이 사랑스러운 인류가 또다시 지구를 바꿔놓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나약하고 욕심쟁이이지만 위기의 상황에선 언제나 단합했고 이기적인 것만큼 이타적인 동물이기에 난 인류도 사는 또 다른 지구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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