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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MRH Jun 05. 2023

나의 스승이었던 너에게

우리가 아직도 연결되어 있다면

  안녕.

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던 게 기억나.

네가 교환학생으로 머나먼 독일로 간다는 말에 너에게 짧은 편지를 썼었어. 

너랑 마지막으로 같이 술을 마시고 네가 피우던 담배를 피우고 교정을 산책했지. 

우리가 늘 같이 하던 여느 날들과 똑같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 

우린 우리의 추억이 있는 장소마다 멈춰 서서 추억을 얘기했지. 


  네가 독일로 떠나고 나서 난 네게 이메일을 보냈어.

그러자 넌 대뜸 '난 편지가 좋아!'라고 했지. 

그래서 그다음부턴 네게 편지를 보냈어. 

편지를 쓰고, 같이 보내 주면 좋을 것들을 사고, 또는 만들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꼭 엽서를 샀어. 네게 편지를 보내려고.

지금도 난 여행을 가면 엽서를 사. 더 이상 네게 보내지 않는데도.


  우린 몇 년이나 편지를 주고받았어. 우리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칠 때쯤 네가 독일에 갔고 

내가 대학원을 수료할 때쯤까지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못해도 4년은 편지를 보내고 받은 셈이지.

편지 내용은 별거 없었어. 그냥 요새 듣는 음악, 최근에 본 전시, 화났던 일, 웃긴 일, 요새 하는 걱정, 그런 것들. 

가끔 네게 받은 편지들을 다시 꺼내서 봐.

웃기다가도 이젠 발길이 끊어져 버린 편지에 속상하다가도 그때의 어린 너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


  네가 많이 보고 싶어.

대학 때 너를 만난 건 나에게 최고의 행운이었거든. 

그때의 넌 내 스승이었는데. 

책도, 그림도, 음악도 전부 네가 말한 것들이었는데. 

내 세상이 너에게서 배운 것들이었는데 말이야.


  난 아직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지금의 나를 이룬 것들 중 네가 차지하는 비율이 결코 적지 않으니까.

그때의 내가 지금의 너에게 준 세상도 있을까?

넌 내 스승이었는데 나도 너의 스승이었을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얘기해 줘.

어린 내가 그때의 너를, 또 지금의 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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