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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22. 2024

제주 주택살이 / 지네의 습격

다 없애버리겠어

     

제주이주를 결심했을 때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잘 구할 수 있을지나 아이가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적응을 해줄지 같은 문제보다 나에게 더 크고 심각하게 느껴지는 문제였다. 바로 제주주택엔 벌레가 많다는 소문이었다. 어린 시절 단칸방에 살 때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던 바퀴벌레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던 나는 커오면서도 벌레들만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3단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제주도는 습기가 많아서 벌레들이 살기 딱 좋은 환경이라 바퀴벌레 지네 거미 등등이 무럭무럭 잘 자란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서 듣곤 두려움이 더 커져갔다. 진드기도 지독해서 고사리 따는 할머님들이 이유도 없이 픽픽 쓰러지는 경우도 다 요놈들이 물어서라며 요놈들은 지독하게 한번 물면 몸통이 뜯겨나가도 물은 걸 놓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들었다. 아니 무슨 놈의 진드기가 맹견도 아니고 뱀파이어도 아니건만 한번 물면 놓지를 않는다니.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방역업체뿐이 없다는 생각으로 제주방역업체를 눈이 벌게진 채 뒤져보았고 입주청소를 하자마자 온 집을 안팎으로 철저하게 소독했다.      


이사 후 며칠간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어디서 거미라도 내려오는 건 아닌지 이불속에서 뭐라도 기어올라오는 건 아닌지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꿈을 꿔도 벌레군대에 맞서 전의를 다해 맹렬히 싸우는 꿈만 꾸곤 했다. 다행히 벌레는 생각처럼 많이 나타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가끔 테라스나 베란다틀에서 곱등이같은 놈들과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집안에서 뭔가가 날아오르거나 기어 다니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평상시와 같은 아침이었다. 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안방화장실을 갔고 난 침대에 일어나 앉아 무거운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뭔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내 몸에 있는 모든 털들이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서기 시작했다. 무언가 낯선 생물체가 내 근처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난 뭔가를 본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왕지네가 화장실 앞 발 매트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숨을 멈춘 채 화장실에서 쉬를 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딸을 어서 구출해와야 해.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들어. 몸뿐이야 목소리도 안 나와.

“시.. 시율아!! 발매트에 벌레!! 거기 그대로 있어!!”

“벌레?? 으앙!!!!”

출근준비를 하던 남편에게 비명을 지르며 외쳐댔다.

“오빠!!! 지네!!! 지네가 나타났어!!! 화장실 발매트에 숨어있어!!! 어서 잡아줘!!!”

남편은 왜 소리를 지르냐며 뛰어오더니 실물로 영접한 왕지네를 보더니 사색이 되었다.

“저 큰 놈을 내가 어떻게 잡아!!”

“그럼 누가 잡아!!!”

“으앙!! 엄마!!!”

난장판이었다. 아이는 화장실에 서있는 채로 울고 있고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발매트에는 왕지네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사색이 된 채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내 딸을 구출해야 했다. 나는 엄마다!! 아엠 마더!! 내 아이를 더 이상 겁에 질린 채 놔둘 수 없었다. 부엌으로 뛰어가서 고무장갑과 검은봉다리를 들고뛰어 들어온 나는 장갑을 낌과 동시에 지네가 붙어있는 발매트를 잡아 올려 돌돌돌 말아버렸다. 지네는 발매트 사이에 낀 채로 김밥말이가 되어 찌부가 되기 시작했고 난 김밥말이가 된 지네매트를 그대로 검은봉다리에 던져 넣었다. 완벽하게 지네매트를 처리한 나는 검은봉다리와 장갑을 남편에게 집어던지고 이산가족 상봉하듯 딸에게 달려갔다.

“시율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

“무서웠져? 엄마가 벌레 다 잡아버렸어. 봤지? 이제 괜찮아 괜찮아”

남편은 검은봉다리와 장갑을 든 채 뒤에서 멍하니 서있었고 난 아이를 안고 한참을 토닥여주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지네는커녕 모기도 무서워하던 내가 지네를 한 손으로, 아니지 한 고무장갑으로 처치해 버리다니. 지네는 한쌍으로 다닌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자기 짝이 매트말이가 된 채 검은 봉다리에 실려 나가는 걸 본 것인지 더 이상 다른 지네는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다. 큰 놈을 한번 겪었더니 그 후로 나온 거미나 작은 벌레들은 이제 두렵지도 않게 되었다. 이따금 보이는 거미는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러서 보내드리고 작은 벌레들은 고양이들이 놀잇감으로 아주 즐겁고 잔인하게 가지고 놀다가 보내드린다. 남편은 지네사건 이후로 고무장갑을 낀 나를 조금은 두려워하면서 존경하는 것 같다. 남편이 점점 쓸모없어지는 것 같아 살포시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매트말이를 할 순 없으니 참고 보듬어주려 한다.     


주택살이는 벌레걱정까지 해결되자 우리 가족에게 90%의 만족을 주고 있다. 평생 아파트생활만 해왔던 터라 불편해서 1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오진 않을지 걱정했었지만 주택은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살게 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오롯이 우리만 있는 우리 집이라는 안락함과 세련되지 않아서 더 좋은 투박함이 좋다. 단점은 단점대로 그때에 맞춰 해결해 버리면 된다. 아엠마더를 외칠 수 있는 포부와 고무장갑만 있다면 무엇이든 무찌를 수 있다. 그날 먼저 간 왕지네의 명복을 빌어보며 다신 우리 집 근처엔 얼씬도 안 하길 소원한다.


                                        

평화로운 우리집에 지네라니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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