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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22. 2024

신경정신과 무섭지않아요

우울증약먹은지 어느새 6개월


우울증으로 신경정신과 약을 먹은지 6개월정도가 지나고 있다. 어느새 반년이 흘렀다니. 어떤약이라도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먹은 적이 없었던 내가 2주마다 병원을 찾아가고 아침저녁으로 매일 2번씩 약을 빼먹지 않고 먹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뿌듯함이 밀려온다. 6개월 전 처음 신경정신과를 찾았던 날을 생각난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남의 눈을 의식했던지 마스크도 꽁꽁 쓰고 진료대기실에서 다른 대기자 분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죽인 듯 앉아있었다. 지금은 완전 고참이 다됐다. 마스크 따윈 집어던진 채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매니저선생님과 밝게 인사를 나누며 대기실을 어기적거리며 비치되어있는 책들을 자유롭게 읽고 살펴본다. 내이름이 불려지는것도 화들짝 놀랬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언제쯤 포비를 불러주실지 종종거리며 기다린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현재 고민거리를 얘기하는 2주마다의 만남이 어느새 편안한 일상이 되고 있다.     

병원을 가기전의 나와 지금의 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땐 글은 쓰고 싶은데 다른 여러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너무나도 헤집어놓아서 도무지 글쓰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글쓰기모임을 신청해놓고 이런 식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갔던곳이 신경정신과였다. 나의 우울증은 이미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감히 헤쳐보기가 겁이났고 우울증이란 진단이 내려지는 것 또한 무언의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처음 약을 받고 온날 약을 삼키면서 울기도 많이도 울었다. 내가 왜 우울증세가 생긴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것인지. 이 길의 끝은 무엇일지.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다. 하나씩 걱정을 덜어 나가보자는 선생님 말씀대로 우선 잠이 잘 오는 약과 롤러코스터같이 변하는 나의 기분변동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는 약을 처방받았다. 잠을 잘 자게 되면서 생활이 조금씩 편해졌다. 예민함도 내려갔고 기분의 높낮이가 평균화 되다보니 아이나 남편에게도 괜한 성질을 내지 않게 되었고 글쓰기의 집중도도 올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과의 상담도 편해져갔고 상담을 통해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고민들이 얼마나 사소한 일들인지 객관적으로 인식해나갈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약을 줄여나가고 있다. 마음이 너무 편해졌는지 부작용 아닌 부작용으로 잠을 12시간을 자도 또 졸린 사태가 발생되기에 이렇게 자다간 소가 될 것 같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나아지는 단계에서 겪는 과정이라며 약을 줄여주셨다. 지금 줄인 약은 생리증후군 처방약으로도 먹는 가벼운 정도의 약이라 하시며 얼마안가 곧 약도 끊을 수 있을 거라 하셨다. 기분이 오묘했다. 6개월 전에 내가 가졌던 고민들이 지금이 되었다고 별로 달라진것도 없는데 내 생각의 변화만으로 그때 나를 짓누르던 고민들이 이젠 고민 같게 느껴지지도 않다니.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고 한 발짝 뒤로가서 나를 바라보니 세상에 고민할거리는 가족의 건강과 안위 말고는 그 무엇도 나를 잡아먹을 수 없는 그냥 지나가는 걱정거리일 뿐이었다. 내가 먼저 걱정한다고 해서 무언가 시원하게 해결이 되는 일도 없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삶이 지속되는 한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다 겪어나가는 일들이다. 걱정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단 오늘, 지금, 현재를 충실히 느끼고 즐기며 살아가는 게 나와 우리가족을 위한일이다.    

 

용기 내어 병원을 찾아가길 잘했다. 약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불필요한 걱정에 휩쌓인채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 이겨낼 수 없다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잡고 일어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병원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 무슨 자존심과 오기였는지 그동안 나는 고집스럽게도 혼자 마음을 닫은 채 해결도 안되는 문제들을 감싸안고 있었다. 타인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삶은 타인으로 인해서 상처도 받을 수 있겠지만 더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힘들면 기대고, 울고 싶으면 잠시 쉬며 짐을 나눠가지자.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6개월 전 울면서 삼켰던 2알의 약이 어느새 한 알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비타민제와 함께 가볍게 던져 올리며 약을 삼킨다. 약을 완전히 끊게 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지만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는 시시때때로 언제든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젠 두렵지 않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일이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혼자 겪기가 힘들면 다시 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많고 감기는 그냥 감기일 뿐이다. 다음에 마음의 감기는 재채기 한방으로 날려버리고 싶다. 크고 우렁차게 뱉어내리라. 에이취!!!

고양이, 햇살, 노트북, 고구마, 딸과 함께라면 우울증따윈 낄 틈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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