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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10. 2024

누가 누구의 감정쓰레기통일까

엄마의 전화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가 울린다.

오전, 오후, 저녁, 주중, 주말도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울리는 엄마의 전화.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울리는 이놈에 전화. 엄마의 전화는 정말 지독히도 울린다. 나의 평온한 클래식 벨소리는 엄마라는 발신자명을 보는 순간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변신이 된 채 내 귓가에 소리친다. “어서 받아 삐용삐용~ 당장 받아~ 받을 때까지 울릴 거야 삐용삐용~” 엄마는 하루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나에게 말해야 하고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게로 전달된다.    


“네 아빠가 오늘은 또 뭐래는 줄 알아? 거실에 등을 하나 더 켜놨다고 오전 내내 잔소리를 한다. 저번 달에 전기세가 많이 나온 게 엄마 탓이라는 둥 아주 하루종일 거실등 얘기만 하고 있다. 네 언니는 아빠가 잔소리한다고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선 방안에선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아빠에 대한 원망과 짜증, 언니에 대한 답답함과 걱정거리들은 매일 반복되는 엄마의 일상이고 그 일상은 엄마를 통해서 내게도 매일 반복된다. 아이를 낳기 전 사회생활을 할 때는 엄마의 전화는 스팸 전화처럼 취급하고 대부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미안함도 몰랐다. 그땐 엄마의 감정에 무심했고 가족보다는 내 삶을 둘러싼 타인들과의 관계에만 집중해 있었다. 그러다 육아가 시작된 후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에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춘 딸이 되어갔다. 내가 엄마라는 입장이 되고 나자 남편에게 어떨 때 서운한지 아이 때문에 뭐가 힘든지 엄마의 감정에 공감이 되어갔다. 엄마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겪으며 한평생 살아온 한 여자였다. 육아 후 책도 많이 보고 글까지 쓰게 되자 나의 공감력은 더더욱 치솟아 올라갔고 엄마의 하소연에 아주 적합한 감정 쓰레기통으로 거듭났다.     


얼마 전 엄마는 아빠가 간식으로 오징어땅콩 과자를 사 오라고 한 것마저 하소연하셨다. 난 분명 뭔가 중요한 걸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자 머릿속엔 오징어땅콩만 맴돌고 있었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징어땅콩까진 얘기 안 해도 된다고 나 지금 저녁 차려서 바쁘다고 짜증을 확 내버렸다. 엄마는 순간 조용해졌다. “그래 알았다. 내가 너무 전화를 많이 했지. 바쁠 텐데 끊자.” 엄마의 전화는 그날 그렇게 찜찜하게 끝이 나버렸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며칠간 전화가 없었다. 첫날은 후련했다. 뭔가 허전하긴 했지만 귀찮은 전화가 오지 않자 마냥 편했다. 둘째 날부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은 없는지, 마음이 많이 상한 건 아닌지, 3-4일이 지나자 난 내가 엄마에게 져버렸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궁금해지고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3-4일 동안 묵힌 내 얘기를 할 곳이 필요했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의 다독거림이 그리웠다. 그동안 엄마의 전화를 항상 내가 받아준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반대였다. 내 안부를 엄마가 쭉 물어봐 준 것이었다. 엄마가 돼버린 딸을 한 여자로 한 사람으로서 위로해주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닌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커오는 모든 순간 그래왔듯이 내 변화에 발맞춰 항상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엄마 별일 없어? 왜 이리 조용해.”

“네가 바쁘잖아. 엄마가 괜히 자꾸 전화한 거 같아서.. 별일은 없지?”

“바쁘긴.. 나 오늘 시율이 머리 자르고 왔는데 엄마 안 궁금해?”

“어머 머리 잘랐구나. 사진 좀 찍어서 보내봐라. 잘 어울려? 엄마는 글쎄 방금 네 아빠가 붕어빵을 사 오라고 해서 나왔잖니. 먹고 싶으면 빨리 좀 얘기하지 다 저녁에 무슨 붕어빵을 먹겠다고 사 오라는 건지...”     


엄마는 오징어땅콩에 이어 붕어빵 얘기를 시작하셨고 난 엄마의 푸념을 듣다 보니 엄마의 목소리가 달달하면서도 뜨거운 붕어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먹으면 데어버리는 붕어빵처럼 급히 받고 끊어버리면 그 따뜻하고 깊은 속을 제대로 맛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내 전화는 꼭 받아주는 엄마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리게 된다면 어떨까. 아무리 전화를 하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곳에 가버리신다면 그때 난 누구한테 위로를 찾을 수 있을까.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땐 영원히 내 곁에 있는 존재라고 당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 내가 짜증 내고 끊어버린 전화가 마지막 전화가 될 수도 있는 게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 인생일 것이다.


친구도 남편도 자식도 내편이 아닌 것만 같을 때 무조건적으로 내편에 서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짜증을 내든 엄마는 항상 내 얘기를 그대로 듣고 온몸으로 흡수해 주었다. 내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냐며 생색냈지만 사실 엄마가 평생 나의 감정쓰레기통이었다. 그 지속적인 위로와 믿음 덕분에 난 언제나 바로 설 수 있었다. 살아계실 때, 아직 곁에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엄마얘기를 들어 드려야겠다. 그 얘기들이 쌓여 쌓여 내가 정말 혼자라고 느껴지는 날 따뜻한 붕어빵 한입 먹으며 엄마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놈 참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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