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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26. 2024

자궁적출수술 후 떠오른 부처님의 미소


얼마 전 자궁적출 수술을 했다.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어느새 수술한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생리할 때만 되면 지랄병이 생기곤 했다. 생리 7일 전부터 칼 품고 있는 미친년이라고 할까. 어떤 놈이든 걸리면 사정없이 베어버리겠다는 독기 가득한 심술보를 품고 있는 게 내 생리증후군 증상이었다. 눈에 광기가 서린 채 한놈만 걸려라를 내뿜으며 하루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장 만만 한 건 남편이었다. 뭘 해도 화가 났다. 남편이 숨을 쉬고 있으면 숨을 쉬어서 화가 났고 괜스레 말을 걸면 입을 찢어드리고 싶은 욕구가 사정없이 올라왔다. 증후군을 낫게 해 보려고 피임약도 먹어보고 루프착용도 해봤지만 효과는 일시적일 뿐 몸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는 매달 나를 미치게 했다.     


생리날을 중점으로 울고 웃었던 난 자궁적출수술로 인해 생리가 사라지고 나자 심적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기분변덕의 원인이 사라져 버리자 도무지 화낼 일이 없어져 버렸다. 난 인자한 부처님 미소를 지은채 언제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감정의 기복이 없어져버리니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합리적으로 해결하며 분노하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 많이 낯설다. 나만큼 이 모습을 낯설어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남편과 딸이다. 둘은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오히려 두렵게 쳐다보고 있다. 저 여자가 왜 저런 섬뜩한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것인지. 도대체 언제 무슨 화를 내려고 저러고 있는 것인지 내 변화를 절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고 부들대며 떨고 있다. 특히 남편은 아주 티 나게 내 눈치를 보며 멀찍이 떨어진 채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내 미소뒤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다 알고 있다며 자기 눈은 못 속인다며 “어서 정체를 드러내 이 호랑아!”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남편과 딸이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소리가 밖으로 흘려 들려왔다.     


“시율아, 엄마가 좀 이상해 지지 않았어?”

“어. 맞아. 좀 이상해졌어.”

“그치?? 뭔가 더 화가 나 보이지 않아?”

“어. 맞아. 더 무서워진 건 확실해.”

“그치?? 화났는데 미소는 왜 짓고 있는 거래?”

“몰라. 병원 갔을 때 수술을 잘못하고 온 게 분명해.”     


저놈들이.. 아니 저 부녀들이 화를 낼 땐 낸다고 뭐라 하더니 이젠 미소 짓고 앉아있다고 더 무섭다니. 인자한 어머니상은 주지 못할망정 내 미소가 뭐가 무서워!! 잠잠했던 분노를 다시 끓어 올릴 뻔했지만 난 분노하지 않는 여자로 다시 태어났으니 미소를 장착한 후 객관적인 시선으로 날 판단해 봤다. 객관적으로 보니 좀 소름이 돋긴 돋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사소한 일에 혼자 울고 웃고 하더니 자궁을 빼고 돌아오더니 3개월간 갑자기 평온해진 얼굴로 미소까지 띄운채 저 부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자궁만 뺀 게 아니라 정신도 놓고 온 듯싶었을 것이다.     


자궁적출 수술을 하기까지 고민이 참 많았다. 몸속 장기 뭐 하나 필요하지 않은 건 없을 텐데 커져만 가는 근종에 많아지는 생리량, 방광이 눌려 요실금까지 생기고 나니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막상 수술을 해보니 고통도 심했고 수술 후 밀려오는 상실감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안정이 되어갔고 없어진 생리도 너무 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꼭 찾아오던 지랄병도 없어지니 수술 후엔 심신이 다 편해졌다. 사실 나쁜 점이라면 엑스레이상에 장기하나만 없을 뿐이란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생리증후군, 방광염, 생리통, 더부룩했던 뱃살까지(이건 좀 남았다) 사라지고 나니 왜 진작 수술을 결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 또한 그랬듯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궁적출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 용기내고 힘내셔서 어서 편해지시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그렇다고 멀쩡한 자궁은 빼내시면 절대 아니 되고 나처럼 힘든 부분이 있는 분이시라면 진하게 추천드리고 싶다. 이런 추천 쉽지 않은데 별 걸 다해 본다.     


남편과 딸은 내 부처님 미소에 아직도 적응 중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고 언제나 날 예의주시하곤 있지만 내가 괜한 짜증을 내지 않게 되자 저 부녀도 무척이나 편해 보인다. 오늘도 평온한 미소가 내 입가에 머물러있다. 소름 돋지 않는 다정한 미소를 짓는 법을 좀 연습해 봐야겠다. 이러다가 모나리자 미소가 나올까 걱정이다:)          

나는 평화롭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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