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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r 13. 2024

고전책 누구나 읽을 수 있어요

우선 한번 펼쳐봐


오늘 고전독서 모임이 있었다. 저번달에 참여를 못해선지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나 반가운 그들과 이번달 주제책이었던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대한 리뷰를 각자 나누었다. 고전독서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던 장르라 처음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됐을 때 나만 뭔 소린지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혼자만의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매번 주제책이 주어질 때마다 처음 몇 장은 눈알이 빙글빙글 돌고 이 작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당최 어떤 말씀이 신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지은채 읽어 내려가곤 한다. 남편은 내가 고전책만 꺼내서 읽으면 저 여자가 또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 자세를 잡는구나란 눈빛으로 쳐다보고 난 그 기대에 한치에 어긋남도 없이 고전책을 가슴팍에 꼬옥 껴안고 숙면에 들곤 한다. 좋은 책이라 그런지 꿈도 안 꾸고 잠도 찰지게 잘 온다.     


처음 몇 번의 이 고비를 견디고 나면 슬슬 작가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렴풋이 내용이 이해가 될 때쯤 건방지게 책을 내려놓게 되면 잠시잠깐 이해되던 책의 내용은 순식간에 날개를 달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절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내용에 몰입해야 한다. 그렇게 고전책의 고비를 몇 번 견디고 나면 이 고전책들은 오묘한 매력이 있어서 우리 가슴속에 깊이 적셔들기 시작한다. 이 적심을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전책의 매력에 퐁당 빠져들고 만다. 나같이 초 단순한 여자도 고전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을 보면 고전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은 그냥 선입견일 뿐 오래된 좋은 소설일 뿐이라는 것에 깊이 동감하게 된다. 이 매력적인 놈들을 주제로 좋은 사람들과 리뷰까지 나누다 보면 한 달에 한 권씩 읽는 고전책은 내 생활에 생각지도 않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고전책 속에 인상 깊었던 문구들과 멤버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순간순간 내 삶 속에 스며드는 우아한 변화가 나타난다. 단순히 일반책을 보고 나타나는 변화 역시 아름답지만 고전책을 읽고 나타나는 변화는 뭔가 더 깊이가 있고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삶의 본질에 대한 생각. 이 얼마나 고급진 생각인가.     


오늘 모임 때 시온님께서 삶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모임을 마치고 온 이후로도 계속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전엔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보단 그냥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면 돼요.”     

난 제주로 내려온 후 글을 쓰면서 지독히도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해오고 있었다. 가족, 부모, 자식의 의미,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지, 행복이란 또 무엇인지.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의미가 있게 보낸 날은 뭔가 뿌듯함과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밀려왔고 만족스럽지 못한 날을 보낸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 시온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내 뒤통수를 떠억 하니 쳐주시는듯했다. 살아가는 매일매일에 무슨 의미가 그리 필요한 것일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먹고 싶은 걸 먹으면 그렇게 오늘 하루의 의미는 다 채워진다. 삶은 업적을 이루려고 사는 게 아닌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이왕 살아있는 내 삶 이왕이면 속 편히 즐겁게 의미 같은 건 좀 내려놓고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내자.     


고전책 참 찰지게 좋다. 찰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이 간식으로 인절미도 샀다. 역시 책을 삶에 반영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고 유쾌하다. 인절미 가루 톡톡 떨어트리며 오몰거리며 먹을 아이입을 생각하니 오늘 하루도 많이 뿌듯하다.


삶의 한가운데를 거닐어 봅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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