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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Apr 22. 2024

알타리무 종아리를 가진 치어리더

   

학창시절 때 대학교 축제를 볼때면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응원춤을 추는 치어리더언니들이 그렇게 멋져보였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고 춤도 잘 추고 환한 미소도 멋진 언니들을 볼때면 나도 대학을 가면 꼭 한번 치어리더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곤했다. 물론 난 치어리더언니님들의 몸매와 춤실력과는 100%정반대의 조건을 가진 여자였다. 내 키는 초등학교때부터 반에서 1번을 놓친 적이 없는 초단신 키였고 내 종아리는 초등학교때부터 무척이나 근육이 남달랐다. 내 다리 라인은 바로 김장을 해버릴 수도 있을만큼 알타리무 라인이었고 치킨닭다리가 내 다리를 본다면 이런 건강한 친구가 있냐며 튀김옷을 튀기며 다가올 만큼 튼실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내 가장 큰 고민은 교복치마였다. 예쁜 체크무늬 교복치마는 내 종아리를 더욱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치마를 짧게 입으면 다리 근육이 살아서 꿈틀거리게 너무 드러났고 치마를 길게 입으면 치마 속에 숨겨진 뭔가가 거대하게 움찔거리는 것 같아 더 무섭게 느껴지곤 했다. 춤실력 또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근본없는 내 춤사위는 어떤노래가 깔려도 무한 엇박자로 골반을 삐걱거리며 흔들어대는게 특기였다. 이 춤은 박자를 타지 못하는 사람만이 출수 있는 춤으로 맨정신인 사람은 절대로 눈뜨고 볼 수 없다. 이런 몸매와 춤사위를 가진 내가 곱디고운 치어리더를 꿈꾸고 있었다.     

 


학교 입학 후 가을이 다가올 때쯤 드디어 대학 축제 준비가 시작되었고 선배님들이 후배 치어리더들을 뽑기 시작했다.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해 때마침 지원자가 적어 치어리더가 미달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땐 우리과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해야겠다며 난 치어리더를 지원하게 되었고 선배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신채 나를 뽑아주셨다. 미달이 된 해라 그런지 이번해 치어리더들은 대부분 나처럼 키와 몸매가 발달이 덜된 동지들이 많았다. 더욱더 든든함이 밀려왔다. 이제 치어리더도 됐으니 춤과 몸매는 거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삶이란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춤연습으로 자연스레 빠질것이라 기대했던 통통한 내 젖살은 춤연습 후 먹어댄 야식으로 인해 오히려 오동통하게 차올랐고 다리근육 또한 엄청난 운동량으로 인해 더욱더 튼실해졌다.     


고된 춤연습시간을 지나 드디어 축제당일이 되었고 우리에게 선사된 치어리더 옷을 본 순간 앞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상의는 내 건장한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는 나시티로 춤을 출 때마다 배꼽도 빼꼼이 나와서 인사를 할 수 있는 옷이였고 하의는 주름이 이쁘게도 잡힌 반짝이는 똥꼬치마였다. 나는 염병을 외치며 아니 염불을 외치며 이 옷을 받아들였고 막상 옷을 장착해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비워지는 것 같았다. 진정한 무의 정신으로 간 것이다. 축제 당일엔 너무 더운날씨 때문에 오히려 몸통만 가린 이 옷이 고맙게 느껴졌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춤을 추는 건지 물오징어가 흐느적거리는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진 않았지만 어찌어찌 축제는 잘 끝났고 감사하게도 전체 학과 치어리더들 중 우리과가 치어리더 대상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때까지 붙어있던 내 팔다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지만 난 그 모든 고난을 참을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나면 전통적으로 다른과에서 치어리더들에게 미팅문의가 수없이 온다고 들었기에 속으로 므흣한 미소를 지은 채 소식만 기다렸다.     


곧 지식인들이 모여 있을 듯한 경영학과 멋쟁이들이 우리에게 손짓을 했고 난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선배들과 함께 미팅자리에 뛰쳐나갔다. 치어리더니까 당연히 짧은 A라인 치마를 장착한 나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근육질 가득한 스파르타쿠스 전사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내 상상속 모습만은 잘 태닝된 건강하고 섹쉬한 치어리더였다. 지식인들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과는 참한 미소를 지은채 지식인들을 기다렸고 곧 도착한 지식인들은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기수를 지나쳐 쪼르르 우리과 선배들 앞에 자리 잡았다. 우리도 치어리던데!!!!!! 작고 귀엽고 건강한 치어리던데!!!! 저 지식인들 눈알은 단추구멍을 떼서 모양으로만 붙여놨나 어리고 상큼한 신상 치어리더를 못알아보고 그들은 우리과 선배들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고 있었다. 보다못한 우리과 선배가 지식인들에게 이번기수인 우리들을 소개하자 그제서야 놀란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지식인들의 눈빛은 온통 물음표가 가득했다.     


 ‘누가 치어리더라는 것인가? 이것은 몰래카메라인 것인가? 저 작고 용맹한 전사들은 누구란 말인가? 내 지식은 저 전사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     


끝없이 떠오르는 그들의 마음속 질문들을 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굴할 순 없었다. 미팅은 이미 글러먹은 것 같았고 술이나 퍼마시고 싶었다. 이대로 물러서면 술한잔 못 얻어먹을 것 같아서 짝짓기는 됐고 술이나 진하게 마셔보자고 제의했고 지식인들은 반강제로 끌려오듯 술판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날 지식인들의 모든 지식이 저 먼곳으로 날아갈 만큼 그들의 뇌를 맑게 술로 헹궈서 다시 넣어드렸다.  

    

치어리더의 기억은 내게 참으로 므흣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 한동안은 노래방을 가도 치어리더들의 명곡인 ‘박진영의 허니’부터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열창하면서 몸을 흔들어댔고 클럽에 가서 단체로 추는 재미도 상당했다. 비록 내 몸뚱이는 치어리더라고 상상할 순 없는 바디라인을 가졌지만 정신만은 그 어떤 치어리더보다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난 그 후로도 A라인 치마를 굳세게 입고 다녔다. 치어리더를 하기 전엔 내 다리통에 대한 콤플렉스때문에 우중충한 바지만 입고 다녔었는데 한번 시원하게 위아래 벗어던지고 춤까지 춰보고 났더니 못입을 옷이 없게되었다. 막상 내 다리를 드러내고나니 콤플렉스라는게 한번 깨기가 어렵지 깨트리고 났더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만큼 타인은 내게 관심이 없다. 다리통이 두꺼운 소녀가 치마를 입고 다니든 바지를 입고다니든 스쳐지나가는 백만개 다리중에 (통통한)한다리일뿐이다. 만약 그때 그 시절 다리통 때문에 치어리더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난 내 골반춤에 기반이 될 춤사위도 배우지 못했을것이고 지식인들의 뇌를 만져볼 기회조차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치어리더가 꿈으로 남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요즘도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몸이 20살 꽃띠로 돌아간 듯 들썩거리며 반응한다.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나에게 준다해도 그대를 둥두둥 포기할 순~ 둥두둥둥 어~없어요~~~~ 빰빠밤 빰빠밤 빰빰 빰~빰!!”     


추억이 밀려온다. 다리통이 다시 한 번 꿈틀거린다.                   

      

스파르타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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