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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y 21. 2024

남편의 갱년기

 

남편이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포비야, 난 아무래도 갱년기인 것 같아”

“갱년기? 남잔데? 갱년기는 여자만 오는거 아니야?”

“남자들 중에도 30%정도 사람들은 갱년기를 겪고는 한다네. 요즘 내 상태를 좀 생각해보니까 갱년기 증상이 아닐까 싶어.”

“증상이 어떤데?”

“음.. 좀 무기력하고 음.. 아무튼 갱년기 증상인 것 같아”     


난 남자도 갱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갱년기를 겪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내 남편은 절대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성격이라 더욱 상상을 해본적도 없었다. 남편이 출근한 후 남자 갱년기 증상을 살펴보니 무기력증, 졸음, 성기능감소 등등이 주된 증상으로 나왔다. 음.. 생각해보니 남편이 최근 몇 달 전부터 주말만 되면 낮잠도 많이 자고 말수가 좀 줄어든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요 남편님이 갱년기에 시달릴 성격은 아니라 아무래도 무기력증보단 곳추가 제기능을 안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최근 자궁수술 때문에 부부관계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터라 내가 너무 그쪽으로 신경을 안쓰고 있었나 싶었다.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 실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확 열어서 남편의 곳추가 하늘을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이 이 곳추놈은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두 번째 실험.

포옹을 자주하는 편이라 안아주는 척하면서 남편의 무릅위에 앉아서 엉댕이를 살살 문질러보았다. 어라. 곳추의 반응은 정상적 이였다.      


흐음. 곳추의 정상을 확인하고 나자 진심으로 남편의 갱년기가 걱정이 되었다. 성기능 저하가 아니라면 진심으로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다는 것인데 약을 사준 다해도 싫다하고 고민이 있는 듯 말수만 줄어갔다. 서서히 걱정이 되어갔다. 남편은 제주로 이주 후 새로 구한 회사에서 2년째 근무중이다. 제주는 워낙 연봉이 적은 곳으로 유명한데 그에 비해서 연봉도 괜찮은 편이고 직급도 좋은편이다. 대신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대표의 성격이 남편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를 잘 맞춰주는 성격이라 부딪히거나 문제가 생기진 않지만 남편은 근무하는 동안 대표의 성격 때문에 자주 종종 힘들어하고 있다. 아무래도 남편의 갱년기 증상은 회사에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대표 때문에 많이 힘들어?”

“아.. 응 요즘엔 유난히 예민해지고 화만나네.. 신경정신과를 가볼까 싶기도 하고..”

“오빠가 신경정신과를 생각할 정도면 심각한건데..”     


고민이 많이 됐다. 일주일정도 휴가를 낸다고 해서 크게 좋아질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바로 회사를 그만둘 순 없었다. 남편이 너무 힘든 길을 걷고 있는데 무작정 참으라며 나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난 제주로 와서 모든 면에서 많은 안정을 찾았지만 남편이 걷고 있는 길은 아직도 외줄타기였다. 무엇이 맞는것일까.  

   

남편에게 우선 한달 무급휴가를 내보자고 제안했다. 한달 정도 쉬면서 다른 회사를 구할 시간도 벌고 싶었고 그도 지금의 상황을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남편은 내 제안을 미안하고 고마워했다. 남편은 이미 15년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둔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남편에게 많은걸 남겨주었다. 상사로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직원들의 아픔과 고민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일을 해오면서 본인에게 부족했던 점들이 무엇이였는지, 무슨일을 할 때 삶의 의욕을 느끼는지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이번 회사 역시 남편의 평생 회사는 될 수 없다. 더군다나 남편의 좋은 성향까지 우울하게 만든다면 옮길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50넘은 나이라는 조건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한 달간의 시간동안 그에게 더 좋은 일이 생기리라 믿고 기다려보고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 가장 가까운 내가 믿고 힘을 줘야지. 힘내자 남편. 당신은 이번에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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