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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Oct 29. 2024

죽음, 그 이후를 준비해 봅니다


20대 어느 날 갑자기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에게도 전혀 얘기하지 않고 그저 혼자 생각하고 결정했고 신청 후에도 따로 누군가에게 언급을 해본 적이 없었다. 20대 때는 매일같이 술판 고기판 춤판을 벌이며 인생 오늘 먹고 죽자라며 철없이 살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장기기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란 사실을 주변에 얘기한다 해도 저 여자가 아직도 술이 안깼구먼이라고 생각할게 당연했었기에 따로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장기기증을 하고 온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지하게 뿌듯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마구 칭찬해주고 싶었다. 내가 죽은 후엔 이미 내 것이 아닌, 한 줌의 재가돼버릴 몸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니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관심이 많았다. TV를 봐도 드라마 같은 가상얘기보다 인간극장 같은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프로를 즐겨봤다. 삶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굳건히 살아가는 사람들, 아픈 몸으로도 항상 웃음 진 얼굴로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부모를 격려하는 어린 생명들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람 사는 얘기들이 좋았고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빛은 그 어떤 책이나 말에서도 느낄 수 없는 거대한 긍정과 희망의 빛이었다. 타인들의 수많은 삶의 얘기들 중 매번 마음을 울리는 얘기들은 대부분 몸이 아픈 아이들의 얘기였다. 불치병이나 몹쓸 암에 걸려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아이들의 얘기를 볼 때면 그 아이가 웃는 얼굴을 봐도 눈물이 흘러내렸고 아파서 우는 얼굴을 보면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서 뜨거운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 아이들의 희망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언젠간 나을 것이란, 언젠간 이 병원을 나가서 친구와 평범하게 떡볶이도 사 먹고 축구도 하면서 커나갈 수 있을 것이란 그 절절한 믿음의 눈을 볼 때면 내가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란 사실이 슬프고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장기기증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어른이 돼 버린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작고 미약한 행동일 것이다. 이미 한평생 감사하게 쓴 몸의 일부분을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많은 그 누군가를 위해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면 삶을 이미 마친 내겐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한 명에게라도 더 좋은 장기가 갈 수 있도록, 고운 빛깔 뽐내면서 튼튼한 몸체 유지하면서 보낼 수 있도록 검사도 잘 받고 건강한 음식도 잘 먹으며 내 장기를 받게 될 그 누군가에게 몸과 마음 모두 건강이라는 힘 가득 실어서 보내주고 싶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단순한 죽음의 ‘순간’이 아닌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여러 생각이 많이 든다. 2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얼마 전 친정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죽음이란 건 내게 더 가깝게 다가왔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처리해 나가 보니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물론 죽음을 맞은 대상에겐 삶이 끝나는 것이겠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겐 또 다른 시작이었다. 죽음은 감성이 아닌 현실이자 큰 비용이 들어가는 슬픈 이벤트였다. 장례식장 비용 600만 원, 상조회사 비용 500만 원, 화장비용 100만 원, 유골함과 수의 비용 200만 원, 납골당 비용 600만 원, 49제 비용 200만 원, 기타 비용 200만 원으로 한 생명을 보내는데 평균 드는 비용이 2500만 원 정도가 소요됐다. 어느 것 하나 사치 없이 최소한으로 진행했지만 두 분 다 들어간 비용은 비슷했다.(지역별 차이는 있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든 생각은 만약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면, 단 3일 동안 2500만 원이라는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장례는 어떻게 치르고 돌아가신 분은 어떻게 화장을 하며  그 유골은 어디로 모셔야 하는 걸까. 만약 먼 훗날 내가 떠나게 되는 그날, 형제자매도 없이 오롯이 혼자가 돼버린 내 아이에게 엄마가 떠났다는 거대한 슬픔과 장례라는 힘든 절차도 부족해 경제적 부담까지 얹혀주면서 떠나야 한다면 그게 과연 내가 바라는 죽음일까. 그렇다면 나는, 죽음 그 이후를 준비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식들이 귀찮지 않게 미리 가르마를 타주려고,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요. 일찌감치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제 생명이 다한 뒤 장기기증이 가능하면 기증하고 의학 해부용으로 쓴 다음, 시신은 화장해 분골 해서 뼛가루를 유족에게 전달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아마 제게는 묫자리가 필요 없을 거예요. 밀라논나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무릎을 치고 싶은 문장이었다. 난 이미 장기기증을 해놨고 이후 의학 해부용으로 쓸 수 있다면 내 모든 고민은 해결될 수 있었다. 내 장기로 생명도 살릴 수 있고 내 몸으로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도 될 수도 있다. 내 아이는 엄마가 떠난 슬픔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고 필요이상의 절차에 몸과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요즘 나는 의학 해부용 신청에 대해 알아보고 있고 남편에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절차에 대해 말을 해놓았다. 남편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존중해 줬고 그 언젠간 내 아이에게도 엄마가 맞고 싶은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을 전달해 놓으려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어도 내 죽음 그 이후까지는 내가 책임지고 싶다. 내 삶의 빛이었던 내 가족들이 나로 인해 조금의 고통이라도 겪는 걸 원치 않는다. 밀라논나의 아들은 밀라논나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들은 후 말했다고 한다. 엄마의 뼛가루로 인공다이아몬드를 만들어서 품고 다니겠다고. 어찌 보면 조금은 소름 돋을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 아들의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다. 내 아이도 그렇게 내 죽음 이후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내 죽음 이후에 내가 남기는 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사랑하는 내 아이가 굳건히 잘 살아나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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