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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Nov 15. 2024

행복은 인증샷순이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이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그날은 엄마 아빠 언니 가족 모두가 함께 자연농원이라는 곳을 갔을 때였다. 한 번도 가족끼리 외식이나 놀이동산을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날의 기억만은 모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니와 맞춘 듯 오렌지색 원피스를 입고 바가지 머리를 한 나는 자연농원 분수대를 뛰어다니며 활짝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나에겐 상징과 같았다. 우리도 평범한 가족이라는, 괴팍한 아빠가 아닌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난 그 사진을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틈만 나면 보고 또 보곤 했다. 지금은 색이 바래져 버렸지만 여전히 그 사진은 내 오래된 앨범 속에 고이 모셔있다.      


좋은 추억이란 게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느낀다. 내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은 단 한 장의 사진뿐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가족과 함께 하는 모든 기억이 수십 장, 수만 장은 쌓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지런히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동물원, 놀이공원, 불꽃축제, 키즈카페, 호캉스 등등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곳은 줄기차게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자극들을 받아들이기엔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고 나는 기계적으로 예쁜 사진을 남기느라 어디를 놀러 갔든 무엇을 보든 아이의 베스트 컷을 찍어대며 SNS에 올리느라 바빴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사진들을 보여주며 너무 재밌지 않았냐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봐도 아이는 사진 속 자기 모습에 시큰둥했다. 나는 어린 시절 단 한 장의 사진 속에서 그날의 날씨, 분수대 물의 촉감, 같이 웃었던 웃음소리, 엄마의 다정한 눈빛까지 모든 게 떠오르는데 아이에겐 수백 장의 사진 중에 그저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일 뿐이었다.       


너에게 부족한 건 무엇일까. 아니, 우리에게 넘치는 게 무엇일까. 핸드폰에 가득 찬 사진도, 넘칠 듯한 여러 추억도 아니었다. 증명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나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을 증명하고 싶어 했고, 이미 나는 그 시절을 벗어나 충분히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또 다른 사진들을 무수히 만들어내며 내 행복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제주로 온 후엔 굳이 여행지도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의 생활을 즐겼고 집 근처 어디든 나가서 자연을 즐겼다. 봄에는 동네에 휘날리는 곱디고운 벚꽃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닌 눈과 마음으로 직접 즐겼고, 여름엔 집 근처 바다를 나가 아이와 남편과 함께 수영과 모래놀이를 하며 핸드폰은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가을엔 집 앞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느끼며 선선해진 날씨에 마음껏 산책을 했고, 겨울엔 동네에 한껏 내린 눈으로 고립된 순간까지 즐기며 아이와 눈썰매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들며 보냈다. 사진 속에 무수히 많았던 아이의 사진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가끔 찍는 경치사진으로 계절감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은 줄었지만 아이와 함께 느끼고 체험하는 순간의 추억은 늘어갔다.      


“엄마! 엄마 이 눈사람 기억나?”

아이가 어느 날 내 핸드폰 속 작은 눈사람사진을 가지고 달려왔다.

“아 이 눈사람~ 이거 시율이가 낑낑거리며 만들었던 애기 눈사람이었지~!”

“맞아맞아. 이날 눈이 엄청 왔잖아. 우리 마을이 고립되고 온통 눈 세상이 됐었잖아. 아빠도 회사 못 나가고 나랑 엄청 큰 눈사람 만들고 엄마는 그날 장갑도 없이 뛰어나왔다가 손가락이 온통 새 빨게 졌었어! 그리고 그리고 차 밑에 숨어있던 길냥이들이 우리 차에 발바닥 자국도 엄청 만들어 놨었잖아. 얼마나 귀여웠다고! 그리고 그리고~~”


아이는 한참을 눈사람 사진 한 장을 놓고 그날의 추억에 대해 떠들고 웃고 깔깔거렸다. 그날의 사진은 아이의 사진도 우리 가족의 사진도 남겨져 있지 않지만 작은 아기눈사람 사진 한 장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그날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행복해했다.      


행복은 한 장의 사진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기억과 마음 서로 사랑하는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저 그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어느새 제주에서 맞는 3번째 겨울이 오고 있다. 3년 동안의 모든 추억들이 사진으로 남겨져 있진 않지만 아이의 기억과 우리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만들어져 가고 있다. 다가오는 올 겨울도 눈이 많이 내려줬으면 좋겠다. 아이가 만들 눈사람의 예쁜 미소가 떠올라 벌써부터 설렘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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