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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Apr 25. 2024

(번외)밀라노 탈출기 #2

당신에게는 없어야 할 고난의 하루


밀라노-피렌체 구간의 급행열차가 취소되어 생긴 에피소드로, 아주 길고 지루함을 먼저 알립니다. 혹시 우리같은 경험을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남겨보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허허



밀라노 역에 내렸다.

내가 두려워하는, 커다란 역이다.

취리히 역도 너무나 크고 복잡하여 나에게는 버거웠는데 지금은 마음까지 급하니

저멀리 달아나려는 멘탈을 부여잡아 본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피렌체 행 기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딸로 기차 자동발매기에서는 역시나 운행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 앞의 서양인 커플도 고개를 저으며 돌아선다.


나는 아이들과 캐리어를 맡고 남편은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뛰어갔다. 한 구석에 캐리어를 눕혀 아이들을 앉혀놓고, 마냥 기다리기엔 초조하여 가까이 있는 다른 열차회사인 트렌이탈리아 자동티켓 발매기에 줄을 섰다. 한 편으로는 앞 사람의 발권을 힐끗거리고, 한 편으로는 아이들이 잘 있는지 살펴본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에서 우리 아이들까지 뿅 가져가지는 않을런지.


억겁인듯한 시간이 흘러가고(실제로는 10분여지만) 내 차례가 되었다. 언어를 영어로 바꾸고 목적지를 피렌체로 설정하는 순간, 예매 가능한 표가 눈 앞에 나타났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놀란 나는 화면을 종료시키고 뒤로 다시 가서 줄을 서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트렌이탈리아에 표가 있어!"

"응 나도 지금 보고 있어요. 인포메이션에는 줄이 길어서 자동발매기. 방금 차례가 됐어."

"그럼 그거 예약하자! 내가 지금 갈께요!"


바람처럼 뛰어 남편이 있는 지하2층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마지막 결제 단계에 이르러있었다.

"3번이나 환승인데 괜찮을까?"

"일단 예매하고 생각하는 걸로."



예매를 끝내고 시간을 보니 3시. 기차 시간은 3시 20분이다. 다리보다 두배 빠른 마음으로 뛰어 아이들에게 갔다.

짐을 잘 지키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헉...헉... 얘들아... 표를 샀어!! 뛰어야 해."

누가 먼저랄 것돋 없이 캐리어와 각자의 짐, 서로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아빠는 뛰면서도 플랫폼을 찾고, 나는 아이들 둘이 잘 뛰고 있는지 살피며.


평소에 운동을 안하는 나의 몸뚱이를 두 번 세 번 원망하며 거친 숨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가 출발했다. 3번 환승의 첫번째 목적지. 볼로냐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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