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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Apr 25. 2024

(번외)밀라노 탈출기 #3

당신에게는 없어야 할 고난의 하루


밀라노-피렌체 구간의 급행열차가 취소되어 생긴 에피소드로, 아주 길고 지루함을 먼저 알립니다. 혹시 우리 같은 경험을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남겨보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허허



완행열차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궁화정도 될까?

볼로냐에 도착하는 동안 기차표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번역해 봐도 환승 정보가 없다. 볼로냐에서 다음 기차를 무엇을 타야 하는지, 몇 시인지, 역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우연히 발견한 한국 블로그에서 말하길, 이탈리아 기차표에는 별 정보가 표시되지 않으니 발권 당시에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놨어야 한단다.

혼이 저만치 달아난 상태에서 발권을 한 상태라 사진으로 남겨놨을 리 없다. 내리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지, 가 최선의 방법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피렌체에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 밤 1시에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여담으로, 몇 시간 전 차선책으로 급하게 예약했던 플릭스 버스는 4인 약 16만 원이었다. 어차피 못 타게 된 것, 환불은 어려울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 보니 고객센터로 직접 연락하면 가끔 환불이 가능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완행열차, 우리에게 넉넉한 건 시간뿐이니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첫 상담원과의 연결. "혹시 환불해 줄 수 있니? 바우처 말고 환불을 원해." "바우처로만 줄 수 있어. 우리 바우처는 유효기간이 1년이고 가족, 친구들한테 양도할 수 있단다. 바우처로 줄게." 일부러 채팅이 끊어지도록 시간차를 두고 두 번째 상담원과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안녕, 날씨 때문에 차를 못 타게 됐어.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오늘이 유럽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더 이상 플릭스 버스를 탈 일이 없단다. 혹시 바우처 말고 환불을 해줄 수 있니?" "원래 바우처로만 줄 수 있지만, 혹시 네가 정 원한다면 수수료를 떼고 7만 원 정도는 환불해 줄게."
음.. 취소의 이유가 그들에게 있다면 당연히 전액환불을 받았겠지만, 우리의 사정으로 급하게 예약, 취소했고 어차피 환불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오케이를 했다. 1년 안에 바우처를 쓰지도 못할 테니.



볼로냐에서 무사히 내렸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처럼 막막했지만 또 한 번 부딪쳐야 할 시간이다. 어떻게든 피렌체를 외치면 다음 기차를 탈 수 있겠지. 플랫폼 중간쯤에 직원이 앉아있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탈리아 기차는 워낙 연착이 많고 복잡해서 기차 출도착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앞의 동양인 남자가 표를 내밀며 피렌체행 기차에 대해 묻는다.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센 이탈리아 억양으로 왼쪽으로 쭉 가라는 말만 들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한 번 더 리스닝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다. 왼쪽으로 쭉 가서 One 어쩌고를 찾으라고. 못 알아들었으니 써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화를 내며 어서 비키란다. 여행에 천사가 있다면 그 반대도 언제나 존재한다.


그가 가리킨 곳으로 걷다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1-20의 번호가 있는 걸 보니 우리나라 지하철 같은 것을 탈 수 있는 것 같았다. 아, 아까말한 원 어쩌고가 원 에이트(18)인가 보다 싶어 줄줄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 그곳에 인포메이션이 또 하나 있기에 재확인차 물어보니 맙소사, 원 어쩌고는 [One East]를 말한 거였다. 플랫폼 이름이 원 이스트라고? 숫자도 아닌 플랫폼을 그렇게 불친절하게 안내해 줬다고? 불평할 새도 없어 다시 사람 네 명과 캐리어 3개가 기차놀이를 하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원 이스트를 찾으니 하필 기차가 들어와 있다. 나 오늘 여러 번 죽네.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다음 기차가 몇 시에 있는지 몰랐기에) 기차에 오르기 전, 입구에 서 있던 여학생에게 "피렌체?"묻고는  "Yes, ~~~~"하는 대답만 듣고 몸을 밀어 넣었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기차 목적지에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이 없는데?"

그리고는 구글지도를 열어보고 무릎을 친다.

"아까 그 여학생이 뒤에 덧붙인 말이 한번 더 갈아타야 한다고 알려준 건가 봐."

".... 어쨌든 가까이 가고 있나 봐요. 이젠 정말 모르겠다!!"




<결국 한번 더 환승을 한 뒤 저녁 6시에 피렌체에 도착했다는 슬픈 이야기. 12시간여의 대장정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그린델발트 - 인터라켄 동역 - 탈리아 도모도솔라 - 밀라노 - 볼로냐 - 이름을 잊은 작은 역 - 더 작은 역 -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


오늘의 교훈은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예매할 때는 발권기 화면을 꼭 찍어서 환승지역과 시간 등의 정보를 확보할 것!

기차표에는 출발지와 목적지 이름만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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