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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Jun 25. 2024

10 열 두시간만에 도착한 피렌체

고난은 여행의 친구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넘어오면서 12시간여 동안 먹은 거라고는 얇은 피자모양 빵과 샌드위치뿐이었다. 다행히 피렌체의 숙소는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역 주변의 숙소를 검색했던 나 자신, 칭찬해.


사진상으로 오래되고 낡아 보였지만 검색되는 4인실이 많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예약한 곳이었다. 배고픔과 피곤함이 뒤범벅되어 문을 연 우리 방은.. 싹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룸 컨디션에 체내에너지 10 상승. 이번에는 화장실을 열어 본 2호기가 펄쩍 뛴다.

"어.. 엄마.. 저것은! 티비에서 봤던 유럽식 비데!!"

지금껏 말은 안 했어도 집에서 항상 사용하던 비데가 없으니 불편했던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기쁨에 모두 어이없이 웃었다.


스위스에 비해 한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외투만 벗어놓고 미리 아놓은 차이니스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메뉴를 살피는 손이 떨릴 정도로 배가 고팠던 우리는 식당에 들어간 지 삼십 분 만에 주문+식사+계산까지 마쳤다. 음식이 나오는 차례대로 서빙을 해 주던 중국남학생이 깜짝 놀란다. 새 음식이 나올 때마다 먼저 준 접시가 싹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이해해 줘, 지금 우리 뱃속에는 거지가 있단다.


바람도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탈리아로 넘어오니 물가가 확연히 싸졌기 때문이다. 중국식당에서 7가지 음식을 먹고도 부담 없이 결제를 하고 나왔다. "이제부터는 1일 1젤라또다!" 엄마의 통 큰 선언에 아이들은 환호하고 남편은 그저 웃는다.


숙소에 돌아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침대에 내 던진다. 하루가 참 길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 만약 플릭스 버스를 타기로 했다면 밀라노에서 이제 막 출발했을 터였다. 밤 12시가 넘게 숙소를 향해 헤매었을 걸 상상하니 앞이 캄캄하다. 그 상황이라면 또 그런대로 이겨냈겠지만, 숙소에 누워 그 일정을 떠올려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지금 누워있는 폭신한 베개와 이불이 더없이 감사하다.

뜻밖에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아이들과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이번 여행에서 적어도 무릎은 잃은 것 같다. 이래서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 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여행을 안 다닐 생각은 끝까지 없나 보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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