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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Jun 06. 2023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집을 좋아합니다. 집이 주는 편안한 공간감, 집 냄새, 손에 익은 물건들을 좋아합니다. 집에서만 할 수 있는 편안한 옷차림도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고요. 그 모든 것이 좋지만, 집이 좋은 첫 번째 이유는 소망이입니다. 사랑스러운 생명체, 반려묘 소망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요.


집 한 켠에서 소망이를 바라보는 일은 제 중요한 일과입니다. 즐겁고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재밌거든요. 늘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알게 되고요. 오늘 주간보고에는 소망이 관찰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써보려 합니다.


고양이들은 높은 곳을 선호합니다. 사냥감을 찾고,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치기 편리한 장소를 찾는 습성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한대요. 높은 곳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휴식할 때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진다고도 하고요.


저희 소망이 역시, 고양이답게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해요. 문제는 높은 곳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종종 떨어진다는 거예요. 언젠가 쿵,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캣타워 위에서 자던 소망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놀라서 달려갔는데 처음부터 바닥에서 자고 있던 것처럼 태연하게 이어서 자는 게 아니겠어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고요. 함께 쓰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여러 번입니다. 물론 그때도 태연하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눈을 슬쩍 뜨고 있는 게- 진짜 태연한 게 아니라 태연한 척하는 것 같았지만요.


사냥놀이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습니다. 낚싯대 장난감으로 놀아줄 때면 쏜살같이 달려와 낚싯대 끝에 쥐돌이를 멋지게 잡아채는데요. 가끔 조준을 잘못했는지, 전혀 다른 곳으로 점프를 할 때가 있어요. 제가 '엥? 뭐야. 왜 거기 있는데?' 하고 바라보면, 처음부터 그곳을 겨냥했다는 듯 자연스러운 워킹으로 유유히 지나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조금 의아하고, 귀엽고, 웃겼지만- 특별한 이유를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이런 내용을 발견했어요. 야생에서 고양이의 사냥성공률은 10% 내외*로 사냥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는 것, 생존을 위해 사냥이나 무언가에 실패하더라도 기운 빠진 채로 있지 않고 기분을 바꾸어버리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명 고양이의 기분스위치래요.


소망이의 태연한 척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요. 갑자기 소망이가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소망이... 아이유 같지 않나요? 기분이 안 좋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팬의 질문에 아이유가 이런 명언을 했잖아요.


우울한 기분이 들 때 그 기분에 진짜 속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 기분 절대 영원하지 않고 5분 안에 내가 바꿀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해요.




여느 반려인들이 그렇듯 '우리 아인 정말 특별해'라고 생각하는 저의 확대 해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소망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것, 평화로운 집에서 매일 소망이를 바라보는 일은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주간보고를 쓰는 제 곁에서 잠든 소망이는, 오늘은 잠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소망이는 알까요? 오늘 제가 자기의 이야기로 퇴사원 주간보고를 쓰고 있는 걸 말이에요. 넓은 자리를 두고,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에 자리 잡고 누운 소망이를 바라보니 웃음이 납니다. 제 스트레스까지 관리중인가 봅니다.


4년 전 작은 고양이가 제 삶에 난입한 뒤,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출퇴근 패턴은 물론이고 인테리어,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습관까지도요. 매년 이맘때, 6월 첫째 주엔 가본 적 없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곤 했었는데요. 소망이와 함께한 햇수만큼 여행과도 멀어졌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일방적인 희생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망이는 소중한 땅콩을 빼앗긴 채 중성이 되었습니다. 또 주말이면 시골로 떠나는 저를 따라, 매주 먼 거릴 차로 이동하는 삶에도 동참하고 있고요.


우연히 만난 소망이와 저는, 가족이 되기 위해 서로 적지 않은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어쩌면 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나 저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이 사랑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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